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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6년]] [[형조참판]]으로 성절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고 대사헌을 6번이나 역임하고 각 조의 판서를 거쳐 [[1535년]] 우찬성이 되었다가 [[김안로]](金安老)의 모함으로 파직당했다. 당시 그는 [[대사헌]], [[이조판서]], [[형조판서]], [[한성부판윤]], [[호조판서]], [[병조판서]], [[예조판서]], [[좌참찬]], 경기도관찰사를 거쳐 [[우찬성]]이 되었던 것이다.
 
[[1537년]] [[김안로]]가 실각하자 [[호조판서]]로 복관되고 [[우의정]]에 올라 [[좌의정]]을 거쳐 [[1544년]] [[영의정]]에 이르렀다. [[인종 (조선) 인종|인종]]이 즉위하자 [[유관 (1484년)|유관]] 등과 함께 원상이 되었다가 중추부영사로 전임하고 [[1545년]] [[을사사화]](乙巳士禍)를 일으키는 데 앞장서 [[보익공신|위사공신]] 2등에 책록되고 익성부원군에 봉해졌다.
 
[[1548년]] [[좌의정]]과 [[영의정]]에 재임되고 궤장을 하사받았으며 시서화에도 모두 능하고 문집으로는 《묵재집》이 있다. 평소 몸가짐이 검소하고 사치스러운 것을 멀리하였고 집안의 법도가 엄격하여 주변의 칭송이 높았다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