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트 인 바이에른 여공작: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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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헝가리 자치 ===
[[파일:Ferenc József koronázása Budán.jpg|thumb|260px|left|헝가리와 크로아티아 왕, 왕비 즉위식]]
시시는 자신을 환영해주었으며, 조피 대공비와 오스트리아 황실 사람들이 1848년 혁명으로 인해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헝가리 왕국|헝가리]]가 자신과 비슷하다 하여 헝가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조피 대공비는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하여 [[체코어|보헤미아어]]를 배우도록 했지만, 시시는 오히려 [[헝가리어]]를 배웠고, 자신의 모든 시녀들을 [[헝가리인]]으로 교체하였으며, 의상도 헝가리풍 의상을 입었다. 시시는 [[언드라시 줄러]] 백작과 함께 헝가리 자치를 위해 노력했으며, 이를 위해 헝가리에서 연설을 하기도 했는데, [[보오전쟁]]으로 인하여 [[빈]]이 점령당할 위기에 놓이자, 황실 보물들과 예술품들은 [[부다페스트]]로 옮겨졌고, [[황후]]와 아이들 역시 [[부다페스트]]로 피신하였다. 이를 기회로 [[헝가리 왕국|헝가리]]는 [[독립]]을 요구하는데, 시시는 황제와 [[언드라시 줄러]] 백작을 설득하여 대타협([[아우스글라이히]])을 이루어내, [[헝가리 왕국]]이 [[국방]], [[재무]], [[외교]]를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자치를 누리기로 합의하였고, [[1876년]] [[6월 8일]] [[헝가리의 군주|헝가리 사도왕]], [[헝가리의 군주 배우자|사도 왕비]]로의 즉위식을 거행하면서, [[오스트리아-헝가리|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 제국]]이 탄생하게 되었다.
 
=== 멕시코 황제의 죽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