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사: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14번째 줄:
==== 이순신 유적지 보존과 이순신 후손의 빚 청산 ====
[[1930년]]초 [[이순신]] 가문의 개인적인 빚으로 [[이순신]] 사당의 위토가 [[일본인]] 투기꾼에게 넘어가게 됐다는 소식을 접하자
이순신 종손가의 살림이 점점 영세해지면서 돈을 빌려 쓰다가 1300원의 빚을 지게 됐고 그 이자까지 총 2100원에 이르게 됐다. [[1930년]] [[9월]] 채권자였던 [[동일은행]]은 여러 번 빚 갚을 것을 독촉하고 그 해 5월 말일까지 갚지 않으면 위토 60두락(斗落)을 경매에 처분하겠다고 나선 것<ref name="chung01">[http://www.daejonilbo.com/news/newsitem.asp?pk_no=823240 현충사관리소, 충무공 위토서 모내기 행사] 대전일보 2009년 05월 31일자</ref> 이다. 일본인 경매자가 가장 비싼 돈을 제기했고, [[이순신]] 유적지가 일본인의 손에 넘어갈 위기에 처하자 그는 [[송진우 (정치인)|송진우]], [[정인보]], [[김성수 (1891년)|김성수]], [[최남선]] 등에게 연락하여 이 일만큼은 막아야 된다고 호소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