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레일리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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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국가로 독립 ===
어느 정도 개발이 진척되자, 시드니 서쪽에 급사면을 맞대고 솟아 있는 동부 고지의 일부를 이루는 산들이 식민지의 전면적인 발전을 저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얼마 뒤 이 산들을 넘어가는 길이 발견되고, 산지 서쪽으로 끝없이 펼쳐지는 농목의 적지에 개발의 손이 뻗쳤다. 즉 [[1850년대]]에 [[골드 러시]]의 시대가 됐다. [[배서스트 (뉴사우스웨일스 주)|배서스트]], [[벤디고]], [[밸러랫]] 등에서 발견된 금을 찾아서 사람들이 쇄도하였다. [[빅토리아 주]]와 [[뉴사우스웨일즈 주]]에서 시작된 금광 시대는 중국부터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1850년]]의 40만 인구는 10년 후엔 115만, 30년 후에는 223만으로까지 증가하였다.
 
[[1850년]]의 40만 인구는 10년 후엔 115만, 30년 후에는 223만으로까지 증가하였다. 직접 금을 찾는 사람 이외에 기술자·장사꾼도 모여들어 이 대륙의 경제 활동이 활발해지자, 이 대륙 내에 성립되고 있던 6개 식민지간의 물자 교류 및 본국과의 교역도 왕성해졌다. 영국 식민지 총독은 가혹한 세금 및 결정을 내리고, 결국 [[1854년]] 유레카 감옥에서 광산 노동자들의 유혈 봉기가 일어난다. 이를 [[유레카 봉기]]라고 한다. 현재 멜버른에 있는 [[유레카 타워]]는 이 유레카 봉기를 기념한 것이다. [[1880년대]] 시드니와 [[멜버른]]의 세련된 현재적인 모습은 이 금광 시대로부터 일어난 것이다.<ref name="역사"/>
 
[[1901년]] [[1월 1일]]에 [[뉴질랜드]]를 제외한 6개의 식민지 연합으로 구성된 연방 국가로 독립하였다. 이와 같은 배경 아래 1901년, 20세기의 첫날을 기하여 각 식민지는 각 주로 재출발함으로써, 이 땅에 영연방(英聯邦) 내의 자치령으로서 오스트레일리아 연방을 결성하였다.<ref name="역사"/> 1942년 10월 9일에는 외교권과 국방권을 얻은 자치령에서 독립국으로 발전하였다. 1986년 3월 3일에는 독자적인 헌법도 마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