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용: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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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9년에 [[사라센]]들이 [[피레네 산맥]]을 넘어 759년에 [[단신왕 피핀]]에게 마침내 패배할 때까지 셉티메니아에서의 정치적 헤게모니를 유지했고, [[나르본 공성전 (752년–59년)|나르본 정복]]을 마친 피핀은 루시용을 점령하러 갔다. 루시용은 760년에 [[카롤루스 왕조]]가 차지했다. 778년 히스파니아 침략 때, [[샤를마뉴]]는 완충 지대로서 [[히스파니아 변경주]]를 세웠고 이곳의 거주민들은 산맥 등지에 정착했다. 그는 [[알안달루스|무어인들이 지배하는 히스파니아]]에서 온 서고트족 난민들에게 이곳의 영토 일부를 부여해주었고 몇몇 수도원들을 세웠다. 792년 사라센들은 다시 프랑스를 침입했지만, [[카탈루냐]]로 영향력을 확장시켜낸 어린 시절의 [[아키텐 왕국|아키텐]]의 왕 [[루도비쿠스 1세 피우스]]의 섭정이던 [[툴루즈 백작령|툴루즈]]의 백작 [[구일렐무스 겔로넨시스|기욤]]이 이들을 격퇴시켰다.
 
그 당시 피우스의 왕국의 각기 다른 영역들은 완전한 사유지 형태의 영지가 되어 갔고, 893년 [[엠푸리에스 백작 수녜르 2세|수녜르 2세]]는 루시용의 첫 세습 [[백작]]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통치는 시간이 흘러 속주가 곳의 동쪽 부분에서만 확장되었다. [[세르다냐]] (프랑스어:세르다뉴)등의 서부 지역은 900년 초대 백작인 미로 (Miró)가 통치했고, 그의 손자 중 하나인 베르나트 (Bernat)는 중부 지역 또는 [[베잘루]]의 첫 세습 백작이 되었다. 루시용 백작들은 수 세기간 분쟁을 겪던 주변의 대 귀족들에게 맞서 친척이던 [[엠푸리에스 백작령|엠푸리에스]] 백작들과 동맹을 맺었다. [[루시용의 지라르 1세|루시용 백작 지라르 1세]]는 [[툴루즈의 레몽 4세]]를 따라 [[제1차 십자군 전쟁]]에 참여했고, 1099년에 십자군이 들이닥쳤을때, 예루살렘에 발을 들여 놓은 최초의 인물 중 하나였다. 12세기가 시작될 무렵 [[바르셀로나 백작령|바르셀로나]] 백작들의 위신이 커져가기 시작하면서, 루시용 백작들은 그들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것 외에는 선택이 없었다.
 
1111년 바르셀로나 백작 [[라몬 베렝게르 3세]]는 베잘루를 상속받아, 1117년 [[세르다냐]]에 합쳤다. 루시용의 마지막 백작인 [[루시용의 지라르 2세|루시용 백작 지라르 2세]]는 그의 배다른 형제들의 도전을 받았다. 그의 형제들이 자신의 영토를 상속받지 못하기 위해, 지라르 2세는 유언으로 그의 영토를 [[알폰소 2세 데 아라곤|아라곤의 왕 알폰소 2세]]에게 남겼고, 1172년에 차지하였다. [[아라곤 연합왕국|아라곤]]의 지배하에서 경제적, 인구적 성장이 지속되었고, [[페르피냥]]의 항구 중 하나인 [[콜리우르]] (카탈루냐어:코틀리우레/Cotlliure)는 [[지중해]] 무역의 핵심 장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