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세계 대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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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칸 반도의 분쟁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과거 오스만 제국의 영토였던 [[1878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전역|1878년 이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를 점령한 이후 1908년부터 1909년까지 [[보스니아 위기]]가 도래하게 되었다. 이 점령으로 [[세르비아 왕국]] 및 그 국가의 후원자인 [[범슬라브주의]] [[동방 정교회]]의 [[러시아 제국]]을 화나게 했다.<ref name=keegan48-49>{{harvnb|Keegan|1998|pp=48–49}}</ref> 이 지역에서 러시아의 행보는 이미 "[[유럽의 화약고]]"로 널리 알려진 발칸반도의 균형을 붕괴시켜 평화 협정을 불안정하게 만들었다.<ref name=keegan48-49/> 1912년부터 1913년까지 [[발칸 동맹]]과 오스만 제국 사이의 전쟁인 [[제1차 발칸 전쟁]]이 발발했다. 이 전쟁 결과 체결된 [[런던 조약 (1913년)|런던 조약]]에서 알바니아는 독립했으며, 불가리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그리스는 영토를 확대하면서 오스만 제국의 영토가 감소했다. 1913년 6월 16일, 불가리아가 세르비아 및 그리스를 침공하면서 발발한 33일간의 [[제2차 발칸 전쟁]]에서는 불가리아가 패배하여 세르비아와 그리스에게 마케도니아 대부분을, 루마니아에게 [[남 도르부자남도르부자]]를 빼앗기게 되었으며 발칸반도를 불안정하게 만들었다.<ref name=Willmott22-23>{{harvnb|Willmott|2003|pp=2–23}}</ref>
 
== 서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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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지에서는 [[민주주의]]가 발전했다. 일본은 [[오세아니아]]의 군도에 대한 지배권을 확고히 할 수 있게 되었다.
 
한편, 독일은 [[베르사유 조약]]으로 말미암아 반성보다 지독한 가난과 배상금에 대한 것에 시달렸으며 오스만 튀르크도 세브르 조약을 맺음으로써 영토가 크게 줄어들었다([[1922년]] 해체, [[1923년]] [[터키 공화국]] 수립). 오스트리아와 헝가리도 각각 [[생제르맹 조약]], [[트리아농 조약]]을 맺음으로써 영토가 크게 줄어들었다. 불가리아는 뇌이 조약으로 [[도브루자남도브루자]]를 루마니아에 떼어주었다.
 
이탈리아는 승전국이었으나 연합국에게 영토를 보장받기는커녕 냉대를 받았다. 결국 [[1922년]]에 [[베니토 무솔리니]]에 의한 파시스트 정권이 수립된다. 이탈리아와 마찬가지로 [[중화민국|중국]]은 연합국임에도 불구하고 [[산둥 반도]]에 대한 이권을 돌려받지 못하였다. [[우드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원칙에 따라 중앙유럽의 많은 국가는 독립하였으며, 독립을 조건으로 영국을 도왔던 [[인도]]는 그 약속이 무산되자 지속적인 투쟁 운동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