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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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공산주의의 사양기현상 ===
 
동구 공산당들은 소련의 무력을 배경으로 집권하는 과정에서 한결같이 인민민주주의를 표방하였다. 그것은 '사회주의로 가는 새로운 길'이라고 풀이되기도 했으나 실질상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특수형태임에 다를 바가 없었다. 소련에서의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타당(他黨)과의 연립정부 구성을 허용치 않는 것과 비교해서, 노동동맹(勞動同盟) 뿐만 아니라 민족자본가 계급까지 망라한 폭넓은 계급연맹을 기초로 하여, 공산당이 다른 정당들과도 통일전선정부를 형성한다는 {{누가|날짜=2011-11-8|설명도 있었으나}}, 그러한 존재양식은 반파쇼투쟁을 전후한 과도적 형태임에 불과했다. 결국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지도사상으로 하며, 일단 반제·반봉건(反帝反封建)의 단계를 거치고 나면 곧 이어서 프롤레타리아독재의 수립과 공산주의 건설에 진입한다는 점이 본질적인 중요성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논리로 동구제국은 하나의 예외도 없이 공산당 일당독재의 기틀을 노출시켰다. 한편 소련은 동구의 공산화·위성국화(衛星國化)를 추진함에 있어서 정치·이데올로기적 통제에 그치지 않았다. 군사적으로는 [[바르샤바 조약 기구]], 경제적으로는 [[경제상호원조회의]](COMECON)가 있었다. 후자는 '공산주의적 국제분업과 가맹국들의 경제협력의 조화적 발전'을 표방하고 있으나, 문제는 소련 중심의 경제적 통합체제로서 각국 경제의 자립적 토대와 서방접근 가능성에 한계를 설정해 놓고 있다는 데 있었다. <ref name="글로벌 사양기"/>
 
[[소련]]세력권으로부터의 이탈과 민주적 내정개혁을 지향하는 동구제국의 몸부림은 ① 반(反)스탈린운동, ② 자유화운동을 분별케 한다.<ref name="글로벌 사양기"/> 1956년 2월 25일, 제20차 [[소련 공산당]] 대회에서 [[니키타 흐루쇼프]]는 비밀연설을 통해, [[스탈린]]에 대한 개인숭배를 비판하고, [[대숙청]] 당시 행한 스탈린의 무자비한 처사와 범죄행위를 고발하고<ref> 최종기 저, 《러시아 외교정책》서울대학교출판부(2005) {{ISBN|89-521-0578-8}}</ref> {{rp|40}} 가혹한 중앙집권제를 비판하는데 이르렀다.(→[[니키타 흐루쇼프]]) 반스탈린운동으로 인해 동유럽에서는 소련으로부터의 독립운동이 발전해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러한 사태발전은 소련이 좀처럼 용인하는 바가 아니었다. 더구나 자유화 운동에 이르러서는 서방접근 인상과 더불어 공산주의이론에 대한 본질적 수정처럼 간주되는 형편이어서 끝내 소련의 무력진압을 초래하는 꼴로 되고 말았다. <ref name="글로벌 사양기"/> [[폴란드]]에서는 1956년 6월 28일 [[포즈난]] 시의 지스포 기계 공장 노동자들이 최초로 봉기([[포즈난 식량폭동]])하여 곧 정치적인 자유를 요구하는 정치 시위로 번졌고 반소, 자유화 운동이 확산되어 10월 19일에는 전 폴란드에서 반정부 폭동이 일어났다. 그러자, 소련의 [[니키타 흐루쇼프]], [[카가노비치]], [[아나스타스 미코얀]], [[뱌체슬라프 몰로토프]] 등이 폴란드를 방문해서 무력 간섭의 위협을 가함으로써 폭동이 진압되고 이 호기(好機)를 이용하여 10월에 민족주의자 [[브와디스와프 고무우카]]가 소련에 충성을 맹세하여 소련의 후광을 입고 중앙위의 제1서기가 되어 정권을 장악하고 폴란드의 국민 탄압은 본격화되었다.<ref>최정호 저, 《젊음이젊은놈들》대한기독교서회(2004) {{ISBN|2001604940}}</ref> {{rp|91}}
 
바르샤바 동맹기구와 코메콘의 성원으로는 소련 외에 불가리아·폴란드·헝가리·루마니아·체코슬라비아 그리고 동독을 셈 할 수 있지만, 유고슬라비아와 알바니아는 '동구의 이단아'로 불린다. 소련이 믿을 수 있는 '동구의 우등생'은 불가리아 뿐이었다. 헝가리의 경우는 1956년 10월 반(反)스탈린운동이 급기야 반소·반공의거로 확산되었다가 소련의 무력탄압하에 유린당한 역사가 있다. 그러나 이 사건 이후로 개인의 사생활에 대한 통제만큼은 상당히 완화되고 유화정책이 실시되었다. 폴란드는 1956년의 '포즈나니 사건' 이후로 소련의 내정간섭을 배제하는 데 있어 상당한 진전을 이룩했으며, 그 국민은 전통적으로 반소(反蘇) 감정이 뚜렷하다. 루마니아는 중·소 분규에 편승하여 독자노선을 모색하다가 소련의 군사적 위협하에 후퇴하지 않을 수 없었으나 그런 대로 코메콘 체제에 대해서는 비협력(非協力) 자세를 굽히려 하지 않았다. 동독으로 말하면 2차대전의 패전국으로서 줄곧 소련군 점령하에 놓여 있는 부분이라는 특수한 사정이 있다. 체코슬로바키아는 1968년의 자유화운동으로 인하여 소련과 동구권을 진동케 한 바 있다. 그 진보적 민주주의, 정치적 신념의 자유 그리고 한때는 서구와 별 차이가 없었던 언론자유의 허용이 공산권의 내부변화 기운을 부각시켰던 것이다. 그러나 '사회주의로 가는 체코의 길'도 결국은 소련의 무력개입으로 말미암아 좌절을 겪었으며, 아직도 '인류양심의 무거운 짐'이라고 회고되는 형편이다. 다른 한편 소련은 동구의 격동에 불안을 느끼는 동시에 그 영향이 소련내부에 파급되는 것을 두려워해야 하는 입장에서 이른바 '네오 스탈린니즘'이라는 후퇴현상을 느끼게 했다. 그러나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의 매력 상실, 국제공산주의 운동의 균열은 만회 불가능한 상황에 이른 것이다. 동구의 자유화운동과 자주노선 지향은 뿌리 깊은 역사적 기반을 갖고 있는 동시에 이데올로기 퇴색시대의 문제제기이고, 시대의 진운(進雲)을 반영하는 까닭에 불사조와 같은 것이다. 이미 정치심리적 측면에서는 소련과 서구의 중간에 제3지대가 형성된 것으로 관찰할 수도 있다. <ref name="글로벌 사양기"/>
 
=== 동구의 개혁과 대서방관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