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국 (제2차 세계 대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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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임시정부 ===
다수의 연합국과 추축국은연합국은 설립당시 국가의 3요소인 [[영토]], [[국민]], [[주권]]이 없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정부로서정부로써 인정하지 않았다. 또한 한국의 거듭된 요청에도 불구하고,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미국]] 초대되는 것은 없었으며 [[미군정]]정부 역시 임시정부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연합국이라고 간주되지 않는다.
{{Quote|The U.S. and other major powers, on the other hand, deliberately refrained from recognizing the "Provisional Government of Korea" as having any status whatsoever during World War II. The fact that government declared war on Japan, and that Korean elements, mostly long time resident in Korea, fought with the Chinese forces, would therefore have no significance in our view.
미국과 기타 세력은 이에 반해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어떤 방식으로든 어떤 지위를 가지고 있다고 인식하는 것을 신중에 참는다. 그러므로 그 정치 조직이 일본에 대해 전쟁을 선포 한 것도 조선인이 한반도에서 중국군과 함께 싸운 것도 우리에게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wikisource:en:Comments on Korean Note Regarding U.S. Treaty Draft May 9, 1951]]}}
 
하지만 대한민국 임시 정부를임시정부를 연합국이라고 주장하는 견해도 있다. 이러한 주장은 주로 대한민국 내에서 제기되며, [[1919년]] [[3·1 운동]]을 기점으로 구성된 [[대한민국 임시 정부임시정부]]는 이후 [[중일 전쟁]] 동안 [[중국 국민당]]과 연합하여 독립운동을 통한 방식으로 대일 항쟁을 시작하는 한편, [[진주만 공격]]이 있었던 [[1941년]]에는 [[한국 광복군]]을 창설해 [[추축국]]인 [[일본 제국]]과 [[나치 독일]]에 선전포고하고 [[1944년]]에는 버마 전선에서 [[영국군]]의 요청으로 [[임팔 전투]]([[태평양 전쟁]])에 광복군 요원을 투입하여 전쟁에 참여한다. 한편, 임시정부는 1921년 [[중화민국 (1912년~1949년)|중화민국]]으로부터 승인을 받고<ref>[http://www.kyeonggi.com/news/articleView.html?idxno=1035333 미래를 여는 역사의 門 해방 70년 26. 대한민국임시정부 항일외교의 수장 남파 박찬익(朴贊翊)]</ref> 중화민국 이외에도 [[1944년]]에는 [[소련]]으로부터<ref>[http://folkency.nfm.go.kr/sesi/dic_index.jsp?P_MENU=04&DIC_ID=1034&ref=T2&S_idx=67&P_INDEX=2&cur_page=1 한국민속대백과사전,국립민속박물관]</ref>, 다음 해 [[1945년]]에는 [[프랑스]]와 [[폴란드]], [[리투아니아]] 등등 몇몇 정부로부터 승인을 받았다는 것을 근거로 한다.<ref>이정식, 《대한민국의 기원》(일조각, 2006) 93페이지</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81&aid=0002750487 광복회“건국절이라니... 안중근·윤봉길 의사 앞에서 혀 깨물고픈 심정"]</ref>
 
=== 멕시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