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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가 원씨(袁氏)의 세력을 흡수한 후, 고유는 관[[현령|장]](菅長)에 임명되어 치적을 쌓았다. 고간에 조조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으나, 고유는 고간을 따르지 않고 조조에게 갔다. 조조는 어떻게든 고유를 추궁하여 죽이고자 자간령사(刺奸令史)에 임명하였으나, 고유가 직무를 훌륭히 수행하였기 때문에 [[승상]]창조속(丞相倉曹屬)에 임명하였다.
 
그 후 고유는 상서랑(尙書郞)에 임명되었고, 이후 승상이조속(丞相理曹屬)·[[영천군 (중국)|영천]][[태수]](潁川太守)·승상법조연(丞相法曹掾)을 역임하였다.
 
[[황초 (위)|황초]] 원년(220년), [[조비|문제]]가 [[후한 헌제|헌제]]의 선양을 받아 [[위 (삼국)|조위]]를 건국하였다. 고유는 치서시어사(治書侍御史)에 임명되었고 [[관내후]]에 봉해졌고, 황초 4년(223년)에는 [[정위 (관직)|정위]]로 승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