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빈 박씨 (장조):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Neobot (토론 | 기여)
잔글 2018-06-22 Sangjinhwa의 요청, replaced: |본명 → |휘 using AWB
0 개의 출처 구조, 1 개의 링크를 깨진 것으로 표시 #IABot (v2.0beta10)
37번째 줄:
 
박씨는 사도세자의 총애를 받고 있었으나, 사도세자의 옷을 시중드는 도중에 사도세자의 [[의대병]]이 발병해 그 자리에서 맞아 죽었다. [[영조실록]]에는 영조가 우물에 빠질 듯 사랑하더니 왜 죽였냐고 다그치는 대목이 나온다. 이를 비롯한 사도세자의 수많은 비행은 1년 뒤인 1762년(영조 38년) 음력 5월 22일 [[나경언]]에 의해 낱낱이 영조에게 보고되었고<ref>《조선왕조실록》영조 99권, 38년(1762 임오 / 청 건륭(乾隆) 27년) 5월 22일(을묘) 2번째기사</ref>, 결국 사도세자는 부왕 영조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된다.<ref>{{뉴스 인용
| 제목 = 한중록
| url = http://www.anyangilbo.com/news/news.html?pageName=view&news_num=1386&PHPSESSID=e29613ea0e19e143465b877526be53ae
| 출판사 = 안양일보
| 저자 =
| =
| 날짜 = 2012-06-28
| 확인날짜 = 2012-07-21
}}{{깨진 링크|url=http://www.anyangilbo.com/news/news.html?pageName=view&news_num=1386&PHPSESSID=e29613ea0e19e143465b877526be53ae }}</ref> 빙애가 [[사도세자]]에게 살해되었다는 것을 이유로, [[노론]] [[벽파]]에서는 그녀의 아들 [[은전군]] 찬이 사도세자의 아들임에도 아버지 사도세자에게 원한을 품을수 있다는 점을 주목했다. 그런 이유로 [[은전군]]은 [[노론]]에 의해 택군의 대상이 되었지만, [[1777년]] [[7월]]과 [[8월]] [[노론]]벽파 측에서 매수한 자객이 체포되면서 적발당하고, 은전군 역시 역모의 수괴로 몰려 1778년 사사된다.
 
=== 사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