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일순: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어린 시절: 키로 --- > 킬로
23번째 줄:
 
=== 혼인과 유랑 ===
한두 해 가량의3년량의 유랑을 마치고 돌아와 스스로의 호를 시루 증 뫼산 증산(甑山)이라 하고 스물한 살이 되는 [[1891년]]에 [[하동 정씨]]였던 [[정치순]]과 여느 사람들과 다름없이 혼인하게 된다. 그러나 정치순은 집안을 돌보지 않았던 그에게 불만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후에도 딸 하나 이외에는 깊은 교류가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대원사에서의 공부때 정치순으로 하여금 의복을 올리라했을때 정치순의 불만을 미리 아시고 깨닫게 하니 그 후로는 불평없이 아내의 도리를 잘하였다고 한다.
 
[[전봉준]](전명숙) 이 일찍부터 그와 교분이 있었으므로, [[1894년]]에 찾아와 거사를 하는데 도움을 청하였으나 강증산은 “때가 아니니 나서지 말라.”며 “성사도 안 되고 애매한 백성만 많이 죽을 것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이후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자 전라도 일대를 유랑하며 관군에 쫓기던 동학군 몇 명을 구하기도 하고, 동학군에 가담한 사람에게 들지 말라고 권유하기도 하였다. 스물일곱 살 되는 [[1897년]]에 다시 전국 유랑을 시작하여 3년간의 유랑을 끝낸 [[1900년]]에 고향으로 돌아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