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레게네 카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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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제국내의 다양한 경쟁 권력의 균형을 맞추고, 5년 동안 전 [[몽골 제국]]을 다스렸을 뿐만 아니라 그녀의 아들 [[귀위크 칸]]이 즉위할 무대를 설정하였다.
 
[[1241년]] [[오고타이 칸]]이 죽자 우구데이의 숙부로 칭기즈 칸의 막내동생인 [[테무게 옷치긴]]이 대칸의 유궁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군대를 이끌고 우구데이의 황후들이 거처하는 오르두(행궁)로 오자, "우리는 당신의 의붓딸이며 당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다. 무장한 많은 군대를 이끌고 온 것은 무슨 까닭인가? 왜 모든 백성과 군대를 불안하게 만드는가?"<ref>Rashid al-Din, J. A. Boyle tr., The Sucessors of Genghis Khan, Columbia University Press, 1971, 178쪽.</ref>라는 항의하며 거절하였다. 앞서 서방 원정을 나갔던 우구데이의 아들 [[구유크]]가 도착했다는 보고를 듣고 테무게는 대칸의 자리를 포기, 퇴레게네 카툰에게 우구데이에 대한 조의를 전하고 철군하였다. 이러한 옷치긴의 거병은 앞서 우구데이가 옷치긴에 대해 시행했던 중앙집권정책에 수반한 강한 견제책에 대한 반발에서 비롯된 것이었다.<ref>김호동 「구육과 그의 시대」 『근세 동아시아의 국가와 사회』 일조각, 1998, 123~124</ref>
[[1241년]] [[오고타이 칸]]이 붕어한 후 퇴레게네는 섭정으로서 완전한 권력을 쥐었으며 이전의 장관들을 해고하고 그녀 자신의 인물로 대체하였는데 가장 중요한 인물은 타지크 또는 페르시아 여인으로 중동 원정에서 포로로 온 파티마였다.
 
[[1241년]] [[오고타이 칸]]이 붕어한 후 퇴레게네는 섭정으로서 완전한 권력을 쥐었으며 이전의 장관들을 해고하고 그녀 자신의 인물로 대체하였는데 가장 중요한 인물은 타지크 또는 페르시아 여인으로 중동 원정에서 포로로 온 파티마였다.
 
몽골은 일부다처제를 시행하였는데 [[오고타이 칸]]이 선호했던 [[:zh:闊出|코추]]는 다른 아내를 통해 얻었다. 그는 코추의 아들 [[:zh:失烈门|시레문]]으로 자신을 계승하게 지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