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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년, [[유총]]이 근준의 딸인 근월광(靳月光)을 상황후(上皇后), 근월화(靳月華)를 우황후(右皇后)로 삼았다. 이후 유총이 주색에 빠져 지냈고, 근준의 관직은 대사공(大司空), 영사례교위(領司隷校尉)에 이르렀다. 근준의 다른 어린 딸은 [[유찬 (전조)|유찬]]의 태자비가 되었다.
 
318년, 유총이 죽고 유찬이 즉위하였다. 근준은 유찬을 폐출할 것을 은밀히 모의하였고, 먼저 유찬에게 종실 대신인 태재(太宰) 유경(劉景), 대사마(大司馬) 유기(劉驥), 유기의 동생 거기대장군(车骑車騎将军將軍) 오왕(王) 유영(逞), 태사(太) 유의(顗), 대사도(大司徒) 제왕(王) 유매(刘劢劉勱)를 모반으로 무고하여 주살할 것을 건의하였다. 처음에 유찬은 동의하지 않았으나 황후 근씨와 황태후 근월화의 권유로 근준에게 죽이고 정벌하는 대권을 넘겼다.
 
8월, 근준이 종실 대신들을 도륙하였고, 이후 유찬을 공격해 죽인 뒤 평양(平)에 있던 유씨 황족을 모두 죽였다. 근준은 자립하여 대장군('''将军將軍), 한천왕(天王)이''' 되었고, [[동진]]을 향해 칭신하였다.
 
9월, 전조의 대장(大) [[유요 (전조)|유요]]와 [[석륵]]이 연합하여 병사를 일으켜 근준을 공격했다.
 
10월, 유요가 장안에서 황제를 칭했다.
 
12월, 근준이 당제(堂弟) 근명(靳明), 좌우거기장군 교태(泰), 왕등(王), 위장군(卫将军衛將軍) 근강(靳康)에게 살해되었고, 평양은 함락되었다. 근씨의 일족은 모두 유요에게 도륙되었다.
 
{{오호 십육국의 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