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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에 게르만족이 이를 차용하면서 게르만 신화의 신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일본에서는 [[헤이안 시대]]의 홍법대사(弘法大師)가 《숙요경》(宿曜經)에서 전래를 하였고, 이것에 사용된 개념이 [[칠요]](七曜)이며, 칠요에는 일월(日月)과 오성(五星)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오성은 [[[춘추전국시대]] 후기 [[오행설]]과 결합된 [[목성]], [[화성]], [[토성]], [[금성]], [[수성]]이나<ref>[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ED%86%A0%EC%84%B1(%E5%9C%9F%E6%98%9F) 수성], 오행성의 개념, 2018년 12월 21일</ref>, 또는 고대 천문학에서 다섯 행성으로 꼽던 세성(歲星), 형혹(熒惑), 진성(鎭星), 태백(太白), 진성(辰)을 일컸는 말이다.<ref>[https://eco.mtk.nao.ac.jp/koyomi/wiki/CDD7C1C72F1BDB5B4D6A4C8A4CFA1A92FCDCBC6FCA4CECCBEC1B0.html 요일의 전파], 일본 국립천문대, 2018년 12월 21일 확인</ref>
 
[[조선]]은 [[음력]](대통력과 [[시헌력]])이 기준이었고, 달과 [[절기]]를 중심으로 달력을 구성했으며, 요일의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다. 1895년 [[을미사변]]을 통해 집권한 [[김홍집 (1842년)|김홍집]] 친일 내각이 주도한 〈제3차 갑오개혁〉([[을미개혁]])을 통해 1896년 [[태양력]]을 도입하였다. (외교문서에 태양력을 쓴 것은 1888년부터<ref>1888년 8월에 조선은 일본과 ‘辦理通聯萬國電報約定 書’를 체결하면서 외교 문서에 양력을 사용할 것을 다음과 같이 합의했다. 《대한제국기의 태양력의 시행과 역서의 변화》, 정성희 p.3 국사관논총103집</ref>) 요일의 개념을 사용하게 되었으며 요일의 명칭도 일본의 것을 그대로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