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나라: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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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
 
'''대금'''(大金, <small>[[여진어]]:</small> [[파일:Amba-an Ancu-un.svg|60px|女真文中的「大金」]] {{IPA|Amba/amba-an Antʃuantʃu-un/}}<ref>金啓孮,《女真文辭典》, 文物出版社, 1984, 224쪽</ref>, {{llang|mnc|{{MongolUnicode|ᠠᠮᠪᠠ<br>ᠠᡳ᠌ᠰᡳᠨ}}|Amba Aisin}}, [[1115년]] ~ [[1234년]])은 [[여진족]]은 [[아골타]]에 이르러 그 세력이 점점 강성해졌고 [[요나라]]에 도발하기 시작했다. 당시 [[발해]]인 양박(楊朴) 등의 권유로 아골타는 1115년에 황제에 즉위하였고, 국호를 대금(大金, {{llang|juc|Amba/amba-an Antʃuantʃu-un/}}), 연호를 수국(收國, {{llang|juc|Gurun/gurun Bahabaxa Haiuai/}})으로 정했다.<ref>羅永男, 《金代 渤海人의 存在樣態 및 政治的 位相》, 2017, 40~41쪽</ref> 이후 금은 [[북송]]을 멸망시켰고, 여진의 공세를 피하기에 급급하였던 [[남송]]의 [[송 고종|고종]]은 [[1141년]]에 금에 보낸 서표(誓表)에서 자신의 이름 ‘구(構)’를 직접 사용하면서 금나라의 신하를 자칭하여, 보잘 것없는 나라 송이 상국인 금나라에 회하 이북의 땅을 할양하고, 황제의 생일과 신년을 하례하는 사절을 보내며, ‘세폐(歲幣)’가 아닌 ‘세공(歲貢)’으로 매년 은(銀) 25만량과 비단 25만 필을 보낼 것을 약속하기도 했다.<ref>{{서적 인용|author1=윤영인|author2=이용규|author3=김선민|author4=Allsen, Thomas|author5=Biran, Michal|author6=테무르|author7=Crossley, Pamela Kyle|author8=이시바시 다카오|authorlink=|title=외국학계의 정복왕조 연구 시각과 최근 동향|series=|publisher=[[동북아역사재단]]|isbn=9788961871976|page=36~37}}</ref>
 
== 국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