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정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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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정제는 아버지와는 다르게 [[예수회]] 선교사를 그리 총애하지 않았는데 1724년(옹정 2년), 기독교 포교 규제를 더욱 강화하였고 [[예수회]]와 가톨릭 선교사들을 추방하였다. 또한 대부분의 선교사들을 [[마카오]]로 강제 소개시켜 그들이 더 이상 궁정에서 일할 수 없게 하였다. 다만, 오랫동안 궁정에서 일하며 중국어에도 능통하였던 [[주세페 카스틸리오네]] 등 일부 선교사들은 자리를 지켰다. 옹정제가 예수회를 추방한 이유는 이들이 종교의 자유를 부정하고 예수회, 성 도미니크회, 성 프란체스코회, 재속 신부들이 서로 자기들끼리 헐뜯고 싸우는 일에 열중했고 왕자를 꾀어내 달아난 사건에도 연루되었기 때문이다. 예수회 선교사들의 《진귀한 편지》라는 책에서 옹정제는 예수회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인용문2|짐은 당신네 종교가 다른 사람들의 종교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소. 당신네가 마닐라와 일본에서 어떻게 했는지도 아오. 당신들은 선황이셨던 부친을 기만했소, 짐까지 속일 수 있으리라고는 기대하지 마시오" }}
 
그러나 옹정제는 이들을 추방할 때도 온화하고 편안히 귀국할 수 있도록 배려하였고, 도중에 성난 백성들에게 봉변을 당하지 않도록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프랑스의 철학자 [[볼테르]]는 이러한 옹정제의 태도를 관용과 인류애의 본보기로 높이 평가하였다.<ref>볼테르《관용론》(한길사, P 52)</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