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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헌'''(韓勝憲, [[1934년]] [[9월 29일]] ~ )은 [[대한민국]]의군사정권에서 [[변호사]]이며인권 [[대한민국의변호사로 감사원장|감사원장]]을활동했던 지냈다법조인이다. [[전라북도민족문학작가회의]] [[진안군]]에서 태어나 [[전북대학교]]에서 정치학을 공부하였다회원이다.
 
== 생애 ==
[[인권 변호사]]로 유명하다. [[박정희]], [[전두환]] 정권 시절 [[양심수]]들을 변론하였으며, 두 차례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주요 변론 사건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 [[민청학련 사건]], [[통일혁명당 사건]] 등이다.
1934년 [[전라북도]] [[진안군]]에서 태어나 [[전주고등학교]]와 [[전북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였다. [[1957년]] 제8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하여 법무부 검찰국과 부산지검, 서울지검 검사를 하다가 [[1965년]] 변호사를 개업했다. [[박형규]] 목사 등 유신 반대 피고인을 변호하다 [[기독교]] 신앙을 가지게 되었다는 사실을 2017년 6월 16일 CBS초대석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밝혔다.<ref>[https://www.nocutnews.co.kr/news/4800951 "유신 반대 피고인 변호하다 기독교 신앙 갖게돼"]</ref>
 
변호사 개업한 이후 잠시 작가들의 변호를 맡다가 작가 남정현이 쓴‘분지’라는 소설에 대해 ‘반미용공’이라고 하면서 작가가 구속되면서 변론을 맡아 본격적으로 시국 사건 변호사를 맡는 인권 변호사로 영역을 넓혔다. [[박정희]] 정권 시절 [[동백림 사건]], [[김지하]] 시인의 ‘오적’ 필화 사건 등을 변론하며 인권 변호사의 길을 걸었던 한승헌은 군사정권 시기에 정치적 민주화를 요구하다 구속된 [[양심수]]들을 변론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두 차례 구속되었다. 특히 [[1975년]]에는 이후 재심에서 무죄가 밝혀진 유럽 간첩단 사건으로 사형된 [[김규남]] 의원을 애도하는 수필 〈어느 사형수의 죽음 앞에서 - 어떤 조사(弔辭)〉를 [[1972년]] 《여성동아》에 발표하고 자신의 저서에 수록하면서 1975년에 "[[김규남]] 의원을 옹호해 반국가단체인 북한의 선전활동에 동조하고 고무 찬양해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했다"며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되는 필화 사건을 겪으며 당시 129명의 변호인단이 변론에 나서 화제가 된 가운데 열린 재판에서 한승헌은 "사형 집행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쓴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이 선고됐으며 2심에서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3년이 되면서 선고되면서 석방될 때 까지 292일간 구치소에 수감되는 등 8년 5개월간 변호사 자격을 박탈당했다. 이 사건은 2015년 [[김규남]] 의원이 [[유럽 간첩단 사건]]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으면서 한승헌도 재심을 청구하여 2017년 6월 22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항소9부(재판장 이헌숙 부장판사)는 "위법한 수사에 의한 증거능력이 없는 증거를 제외하고 봤을 때 이 사건 수필이 반국가단체에 이익이 된다고 보기 어렵고, 피고인이 수필을 쓰면서 반국가단체에 이익이 있다고 인식하고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다"면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으며 이에 대해 한승헌은 "기쁨보다는 착잡함이 더 크다 아직도 저처럼 정치탄압의 대상으로 억울하게 옥고를 치른 분들이 많은데 앞으로 어떤 독재 권력도 자기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국민의 생명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고 말하면서 사법부에 대해서 "권력자에 의한 사법농단이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했다.<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6221146001&code=940100 반공법 위반 한승헌 변호사, 43년 만에 재심에서 ‘무죄’ 선고]</ref> 이후 부인과 함께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였고 [[서울고등법원]](2018나2050575) 민사15부(재판장 이동근 부장판사)는 "[[중앙정보부]] 수사관들은 불법으로 가두고 잠을 재우지 않는 등 가혹행위를 했다"며 "보편적 자유와 기본적 인권을 조직적으로 침해한 것으로, 민주주의 법치국가에서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하면서 "40여년간 억울한 누명을 쓰는 사회적 불이익과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며 "1983년 사면 받은 이후에도 가족들은 지속적인 감시와 견제를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국가는 3억5000여만원을 배상하라"고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ref>[https://www.lawtimes.co.kr/Legal-News/Legal-News-View?serial=150659 '박정희정권 시절 옥고' 한승헌 前 감사원장, 국가 배상 항소심도 승소]</ref>
[[1957년]] 고등고시 사법과 합격.
법무부 검찰국과 서울지검 검사.
[[1965년]] 변호사를 개업후 한동한 작가들의 변호를 맡다가 인권 변호사로 영역을 넓힌다.
[[1975년]]에, [[1972년]] 《여성동아》에 쓴 〈어떤 조사(弔辭)〉로 필화를 겪으며 구속. 당시 1백29명의 변호인단이 변론에 나서 화제.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인 한승헌은 1990년 5월 11일부터 17일까지 서울 그림마당민에서 개최한‘작가회의 발전을 위한 서화·도예전’에 출품했다.<ref>[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3436141 민족문학작가회의 서화 도예전 열어]</ref>
제12대 감사원장을 지냈다.<ref>[http://www.kipa.re.kr:8090/servlet/obnc.edb.servlet.EdbServlet?command=LIST_PAGE&menu_id=C04003&code_id=C05001 한국행정연구원]{{깨진 링크|url=http://www.kipa.re.kr:8090/servlet/obnc.edb.servlet.EdbServlet?command=LIST_PAGE&menu_id=C04003&code_id=C05001 }}</ref>
 
저작권심의조정위원회 출판분과위원이던 1992년에「책과 인생」 7월호에 발표한 <포스트모더니즘과 저작권>이란 글을 통해 "문학.예술의 신사조에 대한 자신의 몰이해가 한탄스럽다"면서 "남의 글을 드러나지 않게 `차용`하는 것은 문학상의 무슨 기법이나 핑계로서도 허용되지않는 저작권침해"라고 주장했다.<ref>[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3576040]</ref>
== 지은 책 ==
* 한승헌 변호사 변론사건 실록 (모두 7권)
 
<즐거운 사라> 작가인 연세대 교수 [[마광수]]와 출판했던 도서출판 청하대표 장석조가 구속되자 '문학작품 표현자유 침해와 출판탄압 공동대책위원회`를 결성하면서 항의성명서를 발표하고 공청회에서 주제발표를 하였다.<ref>[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3660254 馬교수 구명운동, 문화계 전반으로 확산]</ref>
 
1990년에 앞서 [[전두환 정부]]에서 군 정보기관인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 대상자가 밝혀지면서 NCC 인권위원이던 한승헌을 사찰한 것으로 드러났는데<ref>[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3417163 ]</ref> [[문민정부]] 출범한 이후에도 경찰이 민간인 사찰한 것으로 드러났다.<ref>[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3828701 "경찰 민간인 사찰 계속"]</ref>
변호사를 하면서 주요 변론 사건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 [[민청학련 사건]], [[통일혁명당 사건]] 등이다. 1995년에 [[전북대학교]]에서 법학 명예박사를 수여받았다.
 
검찰의 구형 다음 날 구형량 그대로 선고가 이루어지는 군법회의에 대해 한승헌은 "대한민국의 '정찰제는 백화점의 상(商) 관행이 아닌 군법회의 판결에서 최초로 확립되었다"고 말했다.<ref>[https://www.huffingtonpost.kr/2017/01/02/story_n_13926118.html?utm_id=naver&ec_carp=6646985743240715906 사법부가 권력에 굴복했던 사례 4가지]</ref>
 
다수의 시집을 발표했던 한승헌에 대해 문학평론가 [[임헌영]]은 한승헌의 시에 대해 "전통적인 서정시와 난해한 모더니즘의 전성기에 형성되었으면서도 어느 유파에도 속하지 않는 독창성을 돋보이게 했다."고 하면서 "역사와 민중으로 다가서기 위한 정서적인 자기 내성이자 다짐이며 투지의 단련 과정이었다."라고 평했다.<ref>[http://news.koreanbar.or.kr/news/articleView.html?idxno=15879 법조계 신간 엿보기]하얀 목소리]</ref>
 
[[김대중]]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사상 최초로 평화적인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1998년에 제12대 감사원장을[[대한민국의 감사원장|감사원장]]을 지냈다.<ref>[http://www.kipa.re.kr:8090/servlet/obnc.edb.servlet.EdbServlet?command=LIST_PAGE&menu_id=C04003&code_id=C05001 한국행정연구원]{{깨진 링크|url=http://www.kipa.re.kr:8090/servlet/obnc.edb.servlet.EdbServlet?command=LIST_PAGE&menu_id=C04003&code_id=C05001 }}</ref> 감사원장에 취임하면서 1998년 4월 24일에 신고한 재산이 828,175,000원이었다.<ref>[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4394564]</ref>
 
2019년 1월 28일에 [[KBS 제1라디오]] 프로그램인 [[정관용의 지금, 이 사람]]에 출연하여 대법원장에 대해 "사법농단 방관말고 수습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하면서 사법부 독립과 법치주의 등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ref>[http://news.kbs.co.kr/news/view.do?ncd=4125296&ref=A [정관용의 지금 이 사람] 한승헌 “김명수 대법원장, 사법농단 방관말고 수습에 적극 나서야”]</ref>
 
== 경력 ==
* 1957년 ~ [[부산지방검찰청]] 검사
* 1957년 ~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 1957년 ~ 법무부 검찰국 검사
* 1976년 제1대 한국저작권법연구소 소장
* 1988년 [[한겨레신문]] 창간위원장
* 1990년 저작권심의조정위원회 위원
* 1993년 동학농민혁명백주년 기념사업 재경추진위원회 추진위원
* 1995년 [[연세대학교]] 법무대학원 교수
* 1995년 저작권심의조정위원회 위원
* 1998년 ~ 1999년 제17대 [[감사원장]]
* 1999년 법무법인 광장 고문 변호사
* 2002년 ~ 2004년 제3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
* 2005년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 위원장
* 2007년 ~ [[전북대학교]] 기초교양교육원 석좌교수
* 2007년 4월 ~ [[가천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 석좌교수
* 2012년 3월 ~ [[서울특별시]] 시정고문단 대표
* 2017년 5월 통합정부추진위원회 자문위원단 단장
== 저서 ==
* 1961년 시집 《인간귀향》
* 1967년 시집 《노숙》
* 1972년 5월 《한국의 정치재판》(sinauer)
* 1972년 5월 《법과 인간의 항변》(범우사)
* 1983년 3월 《법과 인간의 항변》(범우사)
* 1983년 7월 《내릴 수 없는 깃발을 위하여》(삼민사)
* 1985년 6월 《허상과 진실》(삼민사)
* 1985년 12월 《역사발전과 민주문화의 좌표》(문학예술사)
* 1986년 6월 《법창에 부는 바람》(삼민사)
* 1988년 3월 《저작권의 법제와 실무》(삼민사)
* 1990년 5월 《갈망의 노래》(범우사)
* 1994년 12월 《한 변호사의 초상》(범우사)
* 1994년 12월 《분단시대의 피고들》(범우사)
* 1996년 11월 《정보화시대의 저작권》(나남)
* 1997년 6월 《불행한 조국의 임상노트》(일요신문)
* 2000년 9월 《법이 있는 풍경》(일요신문사)
* 2002년 5월 《내 마음속의 그들》(범우사)
* 2003년 5월 《역사의 길목에서》(나남)
* 2005년 9월 《산민객담》(범우사)
* 2006년 11월 《분단시대의 법정》(범우사)
* 2006년 11월 《한승헌 변호사 변론 사건 실록》(전7권 범우사)
* 2007년 9월 《한승헌 변호사의 유머기행》(범우사)
* 2007년 10월 《글로벌 시대의 한국과 한국인》(아카넷)
* 2008년 8월 《법창으로 보는 세계명작》(범우)
* 2009년 11월 《한 변호사의 고백과 증언》(한겨레출판)
* 2010년 9월 《한승헌 변호사 스피치의 현장》(매경출판)
* 2012년 5월 《한 변호사의 고백과 증언》(한겨레출판)
* 2012년 9월 《그 남자 [[문재인]]》(함께만드는 세상)
* 2012년 10월 《유머수첩》(범우)
* 2013년 11월 《피고인이 된 변호사》(범우)
* 2013년 11월 《권력과 필화》(문학동네)
* 2014년 2월 《한국의 법치주의를 검증한다》(범우사)
* 2016년 3월 《재판으로 본 한국현대사》
* 2016년 10월 시집《하얀 목소리》(서정시학)
* 2017년 10월 《한승헌 수필선집》(지식을 만드는 지식)
* 2018년 5월 《법치주의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 2018년 9월 《갈망의 노래》(범우사)
== 수상 ==
* 1994년 중앙언론문화상
* 1999년 청조근정훈장
* 2007년 제2회 임창순학술상
* 2018년 국민훈장 무궁화장
== 각주 ==
<references />
[[분류:전북대학교 동문]]
[[분류:새천년민주당 당원]]
[[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
[[분류:대한민국의 수필가]]
[[분류:대한민국의 시인]]
[[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
[[분류:진안군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