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송 무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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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동진]] 말기 강남에서 손은(孫恩)이 난을 일으키자, 형주의 유력자 [[환현 (동진)|환현]](桓玄)이 반란의 진정을 핑계로 건강에 들어가 제위를 빼앗자 팽성(彭城)의 하급군인 이었던 유유(劉裕)는 병사를 일으켜 손은과 환현을 무찌르고 [[동진]]의 황제 [[동진 안제|안제]](安帝)를 복위시켰다. 유유는 [[후연]]의 침공을 격퇴하고, 반란군의 잔당을 소탕한 뒤 북벌을 감행해 [[후진 (오호 십육국)|후진]]의 요홍(姚泓)을 멸망시켜, 그 명성과 북부군(北府軍)의 병권을 배경으로 공제(恭帝)로부터 선양을 받아 즉위했다. 건국 후 귀족의 기득권을 보장해 주면서 정권을 안정화 시켰다. 이때부터 하급군인 출신 황제의 무력과 귀족의 정치력이 결합되어 남조의 독특한 사회체제가 시작되었다.
 
유유는 토단법(土斷法) 등의 경제 정책을 시행하면서 화북에서 온 유랑자들을 강남의 호적에 편입시켜 동진시대의 황적(黃籍), 백적(白籍; 유랑자의 신분증명서를 말한다.)의 구별 철폐를 추진했다. 이로써 토착민과 유랑자 간의 과세의 균등화를 목표로 하였다. 무제는 동시에 군현의 통합을 추진하는 등 경제 재건을 그렸으나 재위 3년 만에 죽었다. 그는 후사를 한문(寒門) 출신의 서희지(徐羲之), 전량(傳亮), 단도성(檀道成), 사회(謝晦)에게 맡겼다. 그들은 2대 소제(少帝)를 퇴위시키고, 문제(文帝)를 즉위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