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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후 ==
타이엔다네기는 전쟁에서 지도자였지만, 모호크 족의 추장을 잇는 핏줄이 아니었다. 그러나 타이엔다네기의 타고난 능력과 초기의 교육, 그리고 인맥으로 부족과 시대의 위대한 지도자가 되었다. 타이엔다네기의 일생에 걸친 임무는 문화의 전환기에 발생한 인디언을 생존하게 하고, 미국 역사의 가장 불안정하고 역동적인 시대에 정치적, 사회적 및 경제적 도전을 극복하게 했다. 타이엔다네기의 인생을 요약하면 성공과 좌절의 반복이었다. 다른 무엇보다 타이엔다네기의 인생은 좌절과 투쟁으로 점철되었다. 젊은 전사, 학생, 농부, 남편 그리고 아버지로서 또는 영국군 장교, 영국 교회의 신자, 신약 번역자 등 많은 역할을 해냈다
타이엔다네기는 1807년 11월 24일, 온타리오 호수 북쪽의 자택에서 사망했다. (이 위치는 온타리오 주 벌링턴 시가 되었다). 타이엔다네기가 조카 존 노턴에게 말한 마지막 말은 민족을 위해 일생을 바친 그의 삶을 반영했다. “가난한 인디언에게 자비를 가져라. 큰 힘과 영향력을 가질 수 있으면, 그것을 사람의 행복을 위해 사용하라.” 그의 주택은 19세기 말까지 타이엔다네기의 자손이 사용하다가 현재는 조지프 브랜트 박물관이 되었다. [[1850년]], 타이엔다네기의 유골은 34마일 (55 km)의 거리를 그랜드 강 젊은이의 어깨에 실려, 프랑트 포드 모호크 교회의 무덤으로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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