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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에는 [[고구려]]·[[발해]]의 영역이었고 [[고려시대]]에는 연주(연산부)·무주로 불렸다. 1012년에는 고려의 [[강감찬]]이 [[거란]]과 싸웠고, 1216년에는 [[김취려]]가 [[금나라]]군과 싸웠다.
 
[[조선시대]]에는 연산도호부·무산현이 설치되었고 1429년에 양자를 아울러 영변대도호부가 놓여졌다. 이후 한동안 [[평안도]][[병마절도사]]가 영변대도호부사직을 겸직하였다. 1624년에는 [[이괄의 난의난]]의 무대가 되고 있다.
 
1895년, 부군제(23부제)에 의해 평양부 영변군으로 개편되었다. 이듬해인 1896년에 13도제가 시행되면서 평안북도에 속했고, 1897년에 평안북도의 관찰사영(도청)이 [[정주시|정주]]에서 영변으로 이전하였다. 1921년에 신의주로 이전될 때까지, 영변은 평안북도의 도청 소재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