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의 로마: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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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3년 5월 29일 [[오스만 제국]]의 [[메메트 2세]]에 의해 비잔티움 제국이 멸망하자([[콘스탄티노폴리스의 함락]]) [[모스크바]]는 스스로 ‘제3의 로마’, ‘새 로마’라고 주장하였다.<ref>{{서적 인용| last = Parry| first = Ken| authorlink =| coauthors = David Melling (editors)| title = The Blackwell Dictionary of Eastern Christianity| publisher = Blackwell Publishing| date = 1999| location = Malden, MA.| isbn =0-631-23203-6| page = 490 }}</ref> 이 같은 사상이 나타나게 된 계기는 [[러시아의 이반 3세]]가 [[소피아 팔라이올로기나]] 공주와 혼인하면서부터이다. 소피아 팔라이올로기나는 비잔티움 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콘스탄티누스 11세]]의 조카딸이었으며, 따라서 그녀와 부부 관계를 맺은 이반 3세는 자신이 몰락한 비잔티움 제국 황제의 후계자가 될 자격이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제3의 로마’ 또는 ‘제2의 콘스탄티노폴리스’ 이야기는 [[트베리의 보리스]] 통치기간 중 트베리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러시아 정교회 수사인 포마는 1453년 《신심 깊은 대공 보리스 알렉산드로비치에게 보내는 찬사》를 저술하였다. 1510년 러시아인 수사 [[프스코프의 필로테우스]]는 [[바실리 3세]] 대공에게 한 통의 서신을 보냈는데, 그 서신의 내용 가운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두 개의 로마는 이미 멸망하고, 세 번째 로마가 새로이 서 있으니, 네 번째는 오지 않을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당신의 기독교 제국을 대신하지 못합니다.” 한편, 공교롭게도 모스크바 역시 로마와 콘스탄티노폴리스와 마찬가지로 일곱 언덕 위에 세워진 도시이다.
 
== 이탈리아의 주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