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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째, 러일전쟁 이전에 이주하여 경제적 토대를 이루고, 러시아에 귀화하여 정치·경제적 지위와 신분을 획득한, [[최재형]]을 비롯하여 [[최봉준]](崔鳳俊)·[[김학만]](金學萬)·[[김도녀]](金道汝)·[[차석보]](車錫甫)·[[김익용]](金翼鎔)·[[김병학]](金秉學) 등이다. 이들은 한인의 이주와 개척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 한인사회의 지도급 인물로 부상하여 한인의 경제적·사회적 지위 향상에 기여해 왔다. 그 결과 각 지방 한민회의 풍헌(風憲)·풍속(風俗)·도헌(都憲) 등의 직임을 맡아 한인사회의 자치제 확립에 기여하였다.
 
* 둘째, 국내 및 간도에서 일제와 항전하다 북상한 [[이범윤]]·[[홍범도]]·[[유인석 (의병장1842년)|유인석]] 등 의병 계열이다. 이들은 [[1908년]]을 전후 최재형 등과 연합하여 의병단(義兵團)을 정비, [[1910년]] 5월 [[13도의군]]을 편성하여 국내진입작전을 전개하였다.
 
* 세째, 국내 등의 지역에서 애국계몽운동을 하다가 군대 해산 전후로 망명하여, 연해주를 독립운동기지로 삼은 계열이다. 헤이그특사로 갔다가 미국으로 건너가 국민회 결성에 참여하고, 북미지방 총회장인 [[정재관]](鄭在寬)과 함께 연해주에 온 [[이상설]]을 비롯하여 [[신민회]] 등에서 활동하던 [[이종호]]·[[신채호]]·[[이동휘]]·[[김하구]](金河球)·[[윤해]] 등이다. 이들은 급진적 의병항전보다는 민족의 실력 양성을 바탕으로 ‘독립전쟁론’에 더 큰 비중을 두었다. 이들은 연해주에 미주의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 시베리아지방 총회와 그 지회(支會) 등을 결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