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전쟁: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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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 공격 ===
남베트남의 절반 이상을 얻게 되자 북베트남 정치국은 중 장군에게 사이공을 공격하라는 최종 공격 명령을 내렸다. [[호찌민 작전]]이라고 불린 이 작전은 5월 1일 이전에 사이공을 함락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5월 이후 우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남베트남군이 전열을 재정비하게 될 경우 작전에 어려움이 닥칠 것을 우려하였기 때문이다. 북베트남군은 빠른 속도로 [[냐짱]], [[깜란깜라인]], [[달랏]]을 점령해 나갔다.<ref>송정남, 《베트남 역사 읽기》, 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 2010년, {{ISBN|978-89-7464-597-7}},501-502쪽</ref>
 
남북 베트남 군대는 4월 7일 사이공 동쪽 64 Km 부근에서 [[쑤언록 전투]]를 치렀다. [[제18 보병 사단 (남베트남)|남베트남군 18사단]]은 수도를 방어하기 위해 [[옥쇄]]하기로 결정하고 북베트남군에 맞섰다. 그러나, 4월 20일 남베트남군 지휘부는 18사단에게 사이공으로 후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ref>송정남, 《베트남 역사 읽기》, 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 2010년, {{ISBN|978-89-7464-597-7}},5003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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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베트남에서 사용할 군수품 공급 등 한국의 남베트남 시장진출을 보장한다.
 
위와 같은 한국 정부의 요구사항은 [[1965년]] [[5월 17일]]에서 18일까지 워싱턴에서 개최된 한미정상회담에서 대부분 타결되었다. 이에 따라 한국 정부는 6월 14일 남베트남 정부로부터 전투병력 정식 파병요청서를 접수하고, [[8월 13일]]에 [[대한민국 국회|국회]] 의결을 얻었다. 대한민국 국방부는 [[주월한국군사령부]]를 창설하고 수도사단장 [[채명신]] 소장을 사령관으로 임명하였다. [[청룡 부대]]가 1965년 10월 9일 [[깜란깜라인]]에 상륙하였고, 9월 20일부터 주월한국사령부가 사이공에서 업무를 시작하였다. 11월 1일에는 [[맹호 부대]]가 [[뀌년]]에 상륙을 하였다.<ref>{{웹 인용
|url = http://www.imhc.mil.kr/imhcroot/upload/resource/V13.pdf
|제목 = 제3차 파병(수도사단/제2해병여단)은 어떻게 이루어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