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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관계: 종증손:조소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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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휘가 몽고에 투항한 이후 종증손 [[조소생]]이 [[1356년]]에 [[유인우]]를 비롯한 고려군에게 쫓겨날 때까지, 4대 99년 동안 쌍성총관부는 조휘 집안의 후손이 세습하고, 천호 자리도 탁청의 후손들이 세습했다. (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52788 )<BR />
조휘의 손녀딸이 [[조선 태조|이성계]]의 할아버지 [[조선 도조|이춘]]에게 시집을 가기도 했다.<ref>[http://sillok.history.go.kr/viewer/viewtype1.jsp?id=kaa_000015&grp=&aid=&sid=0&pos=6 조선왕조실록, 태조 1권 총서 15번째기사] 娶趙氏, 雙城摠管之女</ref><BR />
==조휘와 관련해서 神의 존재를 증명할수 없는 이유==
 
조휘는 한국 역사상 최대의 매국노로서 원나라의 고려복속에 앞장서서 고려가 원나라의 속국이 되게 하였다.
그런데도 조휘는 원나라의 고려복속후 원나라으로부터 벼슬을 받아 호의호식하였다.
조휘의 원나라의 고려복속후 호의호식으로 인하여 神의 존재는 증명되지 않은 것이다.
고려를 원나라에 내주어서 한국사에서 내정간섭받는 시기가 열리게 한 조휘는 원나라의 고려복속후후 암 등 불치병에 고통받아서 이승에서 죄값을 치르었어야 神의 존재가 확실히 증명되던 것인데 그렇지 않아 神의 존재는 증명되지 않았다.
== 가족 관계 ==
* 아버지 : 조지수(趙之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