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바스토폴 포위전 (1941년~1942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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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일, 독일군은 시 중심부를 향해 다시 한번 포격을 시작하였다. 이는 독일군이 시내 소탕전에서 입을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한 것이다. 소련군은 크리미아 반도 최서단의 케르소네스곶으로 후퇴했다. 잠수함을 동원해서 군 수뇌부와 부상자를 되도록 많이 데리고 나왔지만, 남은 병사들은 필사적으로 싸웠다. 한 장교는 상관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말을 들었다. "우리는 여기가 당신이 죽는 장소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당신은 자기 임무를 훌륭히 수행할 것이며 살아 돌아오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당신을 두렵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자기를 속이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우리는 부상자를 케르소네스로 철수시키고 있다. 원하건데 최후의 1인까지, 최후의 일각까지 숨이 붙어 있는 한 부상자를 위해 원호해주길 바랄 뿐이다."
 
7월 3일, 소련군의 마지막 부대가 항복함으로서항복함으로써 세바스토폴 포위전은 개시된 지 247일만에 끝이 났다. 독일군은 이 전투에서 약 10만명의 소련군 포로를 얻게 되었다.
 
== 결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