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율대석: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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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나라는 [[1120년]] 요나라의 수도인 상경 임황부(上京臨潢府)를, [[1121년]] 중경 대정부(中京大定府)를 함락했다. 그러나 이런 급박한 때에도 천조제는 거용관(居庸關)에서 사냥을 하는 등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내몽골 쪽으로 달아나자 야율대석은 한족 관리 이처온(李處溫) 등과 함께 천조제의 숙부 '''야율순'''(耶律淳)을 '''천석황제'''(天錫皇帝)로 옹립하고 요나라의 남경 석진부(南京析津府), 즉 연경(燕京)에 거점을 둔 별도의 정권을 세웠다. 이것이 오늘날 [[북요]](北遼)로 불리는 단명 정권이다.
 
야율대석은 해족 출신 장군 소간과 함께 금나라와 동맹을 맺은 [[중국]] [[송나라]]의 환관 [[동관]](童貫)이 거느린 20만 대군을 격퇴하는 등 분투했으나 야율순이 병으로 죽고 [[1123년]] 겨울[[11월]] 금나라의 맹공으로 연경이 함락당하자 야율대석은 7천 군대를 이끌고 서쪽에 피신해 있던 천조제 일행과 합류했다.
 
== 서요의 건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