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립 모레스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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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립 모레스네'''({{llang|fr|Moresnet Neutre|모레스네모레네 뇌트르}} {{IPA|[mɔ.ʁɛ.nɛ nøtʁ]}}, {{llang|de|Neutral-Moresnet|노이트랄 모레스네트}} {{IPA|[nɔɪ̯ˈtʁaːl ˈmɔʁəsnɛt]}}, {{llang|nl|Neutraal Moresnet|뇌트랄 모레스넛}})는 [[1816년]]부터 [[1919년]]까지 유럽에 존재한 3.5km<sup>2</sup> 크기의 작은 땅으로, 두 이웃 나라 사이에서 소유권에 대한 협정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중립 지역으로 따로 떼어 만들어진 것이다. [[독일]] [[아헨]]에서 남서쪽으로 7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독일]]-[[벨기에]]-[[네덜란드]] 세 나라의 국경이 맞닿아 있는 [[발서르베르흐]]의 바로 남쪽에 있었다.
 
== 설립 ==
[[1815년]] [[빈 회의]]가 이루어지는 동안 유럽의 지도는 새로운 정치적인 힘의 균형에 따라 다시 그려졌다. [[네덜란드]]와 [[프로이센]] 사이의 국경을 다시 정하는 동안 서로는 예전의 국경을 유지시키는 데에 거의 동의했으나 모레스네 지방에서 문제가 생겼다. 모레스네와 노이모레스네(Neu-Moresnet) 지방에서 질좋은 [[아연]] 광산인 [[비에이유 몽타뉴]]({{llang|fr|Vieille Montagne}}, {{llang|de|Altenberg|알텐베르크}})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두 나라는 서로 그 자원을 가지려고 했고 결국 [[1816년]]에 절충안이 체결되었다. 그 결과 모레스네 지방은 네덜란드가, 노이모레스네는 프로이센이 갖고, 광산과 [[켈미스]]({{llang|de|Kelmis}}, {{llang|fr|La Calamine|칼라민}})지방은 두 나라가 합동 정부를 세워서 당분간 중립 지역으로 만들게 되었다.
 
이 새로운 땅은 삼각형처럼 생겼다. 밑변은 아헨에서 [[리에주]]로 가는 길이고, 광산은 그 길 바로 북쪽에 있다. 북쪽으로 뻗은 나머지 두 선은 발서르베르흐에서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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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모레스네 사람들은 아연 광산에서 일했다. 이웃나라에서도 일하기 위해 이주해 온 사람들이 있었지만 모레스네의 총 인구는 3000명을 넘지 못했다. 중립 지구는 많은 장점이 있었는데, 세금이 낮고 수입품에 대한 관세가 없어서 물건의 가격이 주변 나라들보다 쌌다. 우편과 같은 공공 서비스는 벨기에·프로이센과 공유했는데, 이는 지금의 [[안도라]]와 비슷한 방식이다. 초기의 ‘중립’ 주민들은 어느 나라의 법률과 병역을 따를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었다. 이는 한편으로 모레스네가 자체적인 군대를 가질 수 없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 쇠락소멸 ==
[[1885년]] 광산이 고갈되고 나서 모레스네의 존속에 관한 의문이 제기됐다. 모레스네를 더 독립적으로 만들기 위한 아이디어가 제기되었는데, 그 중에는 [[카지노]]와 독자적인 우편 서비스가 있었다. 독일계 의사, 우표수집가, 에스페란티스토였던 [[빌헬름 몰리]]({{lang|de|Wilhelm Molly}}, [[1838년]] - [[1919 년]])는 모레스네를 세계 최초로 [[에스페란토]]를 공식 언어로 쓰는 곳으로 만들려고 했는데, 이름을 아미케요({{lang|eo|Amikejo}}, ‘친구의 땅’)라고 제안했고, 역시 같은 제목의 에스페란토 행진곡을 국가로 제안했다. 하지만 어떤 제안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벨기에와 프로이센은 70여 년 전처럼 서로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1900년 프로이센은 더 공격적인 자세를 보였고 모레스네의 행정을 방해하기도 했다.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 때 독일은 벨기에를 침범했고 [[1915년]]에 모레스네를 합병했다. 모레스네는 더이상 중립이 아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