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령주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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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8년에 [[다윈]]의 '[[종의 기원]]'이 발표되어 후에 [[심령현상 연구 협회]]의 초대회장이 되는 철학자·윤리학자 [[헨리 시지위크]]들은 충격을 받고 있었다. 시지위크는 종교와 과학의 조화라는 문제의 열쇠를 심령주의에 요구해 [[목사]]의 아이인 시인·고전 연구자 [[프레데릭 윌리엄 헨리 마이어스|프레데릭 마이어스]]도 또한, 빅토리아 시대의 [[회의론]]의 아래에서, 신앙과 이성을 화해시키지 못하고 신앙의 근거를 잃어, 죽음에 의해서 영혼이 소멸한다는 불안에 시달리고 있었다. 19871년, 마이야즈는 시지위크에 '[[전설]]·[[직관]]·[[형이상학]]이 우주의 수수께끼를 풀 수 없는데, 유령이나 심령 등과 같이 실제로 관찰할 수 있는 사상을 통해, '보이는 세계'에 대해 무엇인가 확실한 지식은 얻을 수 있는 것입니까'라고 물었다. 시지위크는 그 가능성이 있다고 응해 마이어스의 30년에 미치는 심령 연구가 시작되었다<ref name="요시무라" />. 영국의 전통인 [[경험론]]의 수법에 의해서, 심령주의라는 초상현상을 해명해, 영혼의 사후 존속을 증명해, 새로운 신앙의 본연의 자세를 찾아내려고 했던 것이다.
 
1880년대에, 심령현상 연구를 실시하는 최초의 학술 단체로서 심령현상 연구 협회가 설립되어 심령주의는 처음으로 '과학'적 방법론에 근거하는 조사의 대상이 되었다. 물리학자 [[윌리엄 플레처 바렛트]]의 제안으로 설립되어 빅토리아 시대를 대표하는 학자로, 케임브리지 대학의 교수인 [[헨리 시지위크]]가 초대회장으로 선택되어 그와 두 명의 제자 프레데릭 마이어스와 [[에드만드 가니]]가 중심으로 활동했다<ref name="요시무라" />. 시지위크가 중심이 된 것으로 협회의 사회적 신용을 얻을 수 있어 각계로부터 명사가 참가했다. [[아서 밸푸어]] 등 명문 바르포아가의 사람들, [[윌리엄 베이트슨]] (생물학자), [[루이스 캐롤캐럴]] (수학자), [[존 러스킨]] (작가), [[올리버 로지]] (물리학자), [[코난 도일]] (작가), [[탈륨]]을 발견한 것으로 알려진 [[윌리엄 크룩스]], 노벨 생리학·물리학상을 수상한 [[샤를르 로베르 리시]] ([[엑토플라즘]]의 명명자) 등의 학자·작가, [[윌리엄 스테인톤 모제스]] (영매), [[에드몬드 로쟈즈]] ('라이트' 편집자), [[프랭크 포드모아]] ([[페이비언 협회]]의 창설자) 등도 더해져, 19세기 말 영국에서 대표적인 지식인·문화인이 모이는 학회의 하나가 되었던 것이다<ref name="요시무라" />.
 
심령현상 연구 협회에서는 [[텔레파시]], 히프노티즘 (메스머주의에 의한 트랜스 현상이며, 투시를 포함한다), [[라이헨바흐]]의 오드의 힘, 유령 현상, 물리적 심령현상 등이며, 특히 식역하의 부분 (무의식·무의식)에서의 커뮤니케이션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해진 텔레파시가 중심적 과제였다. 마이어스는 [[무의식]]과 텔레파시에 의해서 심령현상을 설명하려고 해, 종교나 예술에 관해서도 같은 접근를 실시했다<ref name="요시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