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사관학교 (대한민국):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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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혁 ==
[[1945년]] [[12월 5일]] [[군사영어학교]]로 시작하여 [[1946년]] [[5월 1일]] 남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 같은 해 [[6월 15일]] 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 정부수립 후인 [[1948년]] [[9월 5일]] 육군사관학교로 바뀌었다.
 
남조선국방경비대가 창설되면서 경비사관의 양성을 목적으로 [[태릉]]에 설치되었고, 초대교장은 [[이형근]](李亨根) 참령(參領:지금의 소령)이 맡았다. 군사교육 초기에는 일본식이 많이 혼재해 있었는데 점점 미 군사고문단의 교육 프로그램에 따라 미국식으로 바뀌었다. 1~9기까지는 군경력자들이 입교하여 단기 교육으로 임관했다. [[1949년]] 10기(생도 1기)부터 정규과정으로 2년제 교육실시 방침을 세웠으나, 장교수급 문제로 1년으로 단축되었고, 그나마 [[한국전쟁]]의 발발로 많은 동기생을 전쟁터에서 잃은채 [[1950년]] [[7월 10일]] [[대전]]에서 소위(少尉)로 임관했다. [[1950년]] [[6월 1일]] 첫 정규 4년제 사관생도들을 모집하여, 333명의 생도들이 입교했으나, 입교 24일만인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한국전쟁]]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임관전인 생도1기생들과 [[포천]]방면의 [[북한군조선 인민군]]을 방어하다가, 많은 동기생을 잃었다, 이후, 사관학교가 일시폐교함에 따라 육군종합학교에서 훈련을 받고 단기 소위로 임관하였다.
 
이후 [[1951년]] [[10월]]에 [[경상남도|경남]] [[진해시|진해]]에서 새로운 체제로 재개교하여 정규 4년제로 재편하여 11기 생도들을 선발했고, 정규교육을 실시하여 [[1955년]] [[10월]] 11기생의 임관시부터 학사(學士)학위를 수여했다. [[1973년]] 이후 문학사·공학사 학위도 수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