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혁명: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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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혁명 정신 ==
[[파일:Eugène Delacroix - La liberté guidant le peuple.jpg|right|섬네일|250px|《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외젠 들라크루아]], 1830년작, 325 × 260 cm , [[루브르 박물관]]]]
1789년 혁명 초기부터 혁명의 슬로건은 [[자유]]와 [[평등]], [[박애]]였고<ref name=rev_slogan>Georges Lefebvre (2005) [1947]. 《The Coming of the French Revolution》 Princeton UP. p. 212.</ref>, 이러한 혁명 과정에서 발간된 여러 기록물에서는 세부적인 권리와 당면 문제들이 나타나고 있다. 일부에서는 [[자유]]와 [[평등]], [[권리]]로 표현된 경우도 있고, [[1789년]] [[8월 26일]]에 발표한 《[[프랑스 인권선언]]》에는 혁명 슬로건에 부수되는 당면 문제들이 거론되어 있다<ref name=rev_doctrin>Martin, Henri. 《History of the Decline and Fall of the French monarchy》 Volume II (1866) p. 481</ref>. 선언문 제2항에서 “자유와 소유권, 안전 그리고 억압에 대한 저항”이라고 밝히어 자유와 소유권, 안전(생존권), 저항권을 천명하였다. 널리 확산된 혁명 정신의 여파로 다양한 계층에서 분출된 수많은 요구들이 혼란의 와중에서 수시로 반영되었고 [[1793년]]에 제정한 '프랑스 헌법'에는 자유와 평등, 안전, 소유권을 말하였고(특히 제8조는 안전과 인격, 권리 그리고 재산이 거론되었다), [[1799년]] [[12월 15일]] 《통령 정부 선언문》에서는 “소유권, 평등 그리고 자유라는 거룩한 권리”로서 나타나고 있다, 그밖에 [[1794년]] 〈방토즈 법령 시행규칙〉에 대한 [[생 쥐스트]]의 기록이나 [[1795년]] 총재 정부 헌법에서도 혁명의 목표들은 다양하게 나타나있다. 혁명 정신과 관련하여“[[박애]]”를 올바르게 명시한 기록은 [[1793년]] [[파리 (프랑스)|파리 시]] 집정관 회의이며, 다음과 같은 표어를 모든 집에 내걸도록 하자고 결의하였다.
 
{{인용문2|공화국을 위해 흩어지지 말고 단결하라. 자유와 평등, 박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1793년 파리 집정관 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