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버리 브런디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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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Bundesarchiv Bild 183-2004-0309-502, Berlin, Olympia-Vorbereitung.jpg|섬네일|베를린에서 (가운데가 브런디지)|왼쪽]]
'''에이버리 브런디지'''(Avery Brundage, [[1887년]] [[9월 28일]] ~ [[1975년]] [[5월 8일]])는 [[미국]]의 운동선수였고 스포츠 공무원, 미술품 수집가이며 [[박애주의자]]였으나 그는 현재까지도 미국 올림픽 위원회의 위원 때와 [[국제 올림픽 위원회]](IOC)의 위원장이었을 때 했던 결정으로 많은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다.
== 생애 ==
[[디트로이트]] 출생으로 [[일리노이 대학교 어바나-샴페인]]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했고 [[1909년]]에 졸업했다. 몇 년 후 그는 [[시카고]] 등지에서 토목공학과 관련된 일을 하는 에이버리 브런디지 사를 세웠으며 [[1947년]]까지 운영했는데 그의 개인사는 대학교에서 이룬 것과
[[제2차 세계대전]] 중에 IOC 위원장이었던 [[앙리 드 바예라투르]]가 사망한 후, 브런디지는 IOC 부회장이 되었다. 이때 위원장은 [[시그프리드 에드스트룀]]이었지만 [[1952년]]이 은퇴한 후에 브런디지가 후임이 되었다. IOC 위원장 재임중에 어떤 형태로도 프로선수가 참가하는 것을 강하게 반대했지만 이 태도는 차츰 스포츠계에서, 또 다른 IOC 위원도 반대하는 형국이 되어버렸다. 이러한 변화는 몇 번이고 논의를 한 것처럼 사건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 결과로 [[1972년 동계 올림픽]]에 참가한 [[오스트리아]]의 [[카를 슐란츠]]가 프로란 이유로 경기에 참석하지 못했다. 또 [[1968년 하계 올림픽]]에서는 [[토미 스미스]]와 [[존 칼로스]]가 시상식에서 블랙파워 행동을 찬성하는 의미에서 주먹을 불끈 쥐고 들어올린 사건도 있었다. 브런디지는 이에 대해서 두 선수를 선수촌에서 추방시키고 출장정지를 처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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