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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 초기 큐비즘 ===
[[폴 세잔|세잔]]은 화가는화가가 빛의 속임수를 그리고 현상을 모사(模寫)하는 데 불과하는불과한 것을 불만으로 여겨 더욱 항구적인 자연을 그리려고 부심하였다. [[파블로 피카소|피카소]]가 세잔을 본따서 흑인조각에서 자극을 받아 <[[아비뇽의 처녀들]]>을 그린 것은 1907년의 일이다. 같은 무렵에 [[포비슴]]의 그룹에서 떨어져 나온 [[조르주 브라크|브라크]]는 세잔의 '모든 자연은 원추(圓錐)와 원통(圓筒)과 구체로 환원된다'라고 말한 내용의 에밀 베르나르에게 보낸 편지(1907년에 공표되었다)의 그 구절에 따라 <에스타크 풍경>을 그리고 있었다. 1908년 이 풍경화 6점은 살롱 도톤에 출품하여 결국 낙선이 되었으나 그 때의 심사위원인 마티스가 '이 그림은 작은 퀴브(입방체)로써 그려졌다'라 평한 말이 퀴비슴의 명칭을 만든 실마리가 되었다. 브라크의 낙선작품은 화상(畵商)인 칸와이러의 화랑에서 개인전으로 발표되었는데 그 화상이 피카소와 브라크가 추구하는 공통점을 인정하여 1907년 가을에 두 사람을 만나게 하였다. 그 후부터 두 사람 사이에는 협력관계가 맺어져 1910년까지 퀴비슴은 전적으로 이 두 사람이 추진한 바가 되었다.
 
=== 분석적 큐비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