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야시실리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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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글 영어판 분류 정보를 이용.+분류:기원전 14세기 통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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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야시실리스''' (~기원전 1315)는 히타이트 왕자로 [[수필률리우마수필룰리우마 1세]]의 중간 아들{{모호}}이었다. 그는 [[아르누완다 2세]]의 동생이었지만 [[무르실리 2세]]의 형이었다. 그리고 아마도 잔난자보다는 형이었다.
 
== 역사 ==
수필률리우마가수필룰리우마가 [[하니갈바트]]의 [[투슈라타]] 왕의 아들 [[샤티와자]]와 조약을 체결한 후 그의 딸 중의 하나를 그와 결혼시켰다. 피야실리스는 히타이트 군대를 이끌고 샤티와자를 하니갈바트의 왕으로 설치하였다. 히타이트의 문헌에 따르면 피야시실리스와 샤티와자는 [[유프라테스 강]]을 카르케미시에서 건너서 이리두로 행군하였다. [[이리두]]와 [[하란]]을 줄인 후에 그들은 [[와시슈칸니]]로 계속하였으며 수도 타이테도 정복하였다.
 
샤티와자가 하니갈바트의 속주 군주로 된 후에 수필률리우마는수필룰리우마는 피야시실리에게 아카드 이름 샤리쿠수 라는 이름을 주었고 아시타타와 카르케미시의 영토를 주었다.
사실 유프라테스의 서쪽의 이전 [[미탄니]]의 전 영토가 피야시실리에 의해 지배되었다.
 
이집트가 [[카데시]](킨자)를 공격하자 수필률리우마는수필룰리우마는 포위하고 탈환하였으며 그곳도 피야시실리의 관할 아래에 두었다. 샤리쿠수라는 이름을 그 때까지 지니면서 기원전 1320년 피야시실리는 [[아르자와]] 원정시에 무르실리의 원군이 되었다. 그 후 피야시실리는 카르카미시로 돌아왔다.
 
피야시실리는 병들고 [[무르실리 2세]] 재위 9년이 되기 전에 죽었다. 그의 사후 반란이 [[카데시]]에서 발생하였다. 반란이 진압된 후에 피야실리스의 아들이 [[카데시]]의 왕으로 [[무르실리 2세]]에의해 선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