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태그: m 모바일 웹
405번째 줄:
[[8월 18일]] 김구는 중경 임시정부로 귀환하였다.<ref>[http://kimkoo.or.kr/01kimkoo/sub.asp?pagecode=m01s02t06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봇이 따온 제목 -->]</ref> 1945년 [[9월 3일]] 김구는 임정 국무회의 명의로 발표된 ‘당면정책 14개조’를 발표하였다. 당면과제에 의하면 ‘임정 입국→각계각층 대표자회의 소집→과도정부 수립→전국적 보통선거 실시→정식정부 수립’등 임시정부에서 정규 정부수립 방안을 제시하였다.<ref name="위클리조선" /> 김구는 임시정부 자격으로 귀국을 원하였으나 김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로의 환국을 추진했으나 [[미군정]]은 정부자격의 귀국을 반대, [[존 하지]] 미군정청 사령관은 개인 자격의 환국을 주장하였다. [[11월]]초 [[중국 국민당|국민당]]의 송별식에 초대되었고, [[중국공산당]]의 송별연에도 참석하였다. [[11월 3일]] [[상하이 비행장]]에 도착한 뒤 임시정부 환국 제1진과 함께 개인자격으로 [[중국]]을 출국했다. 당시 임시정부는 귀국을 놓고 서로 먼저 가겠다고 하였으나 [[민족혁명당]]계 [[김원봉]]의 양보로 김구와 [[한국독립당]] 계열이 먼저 귀국하게 되었다. 귀국 시 [[민족혁명당]]의 당수였던 [[김규식 (1881년)|김규식]]도 한국독립당계와 함께 귀국했다.
 
귀국 무렵 김구 일행은 미국 헌병의 보호를 받았으며 김구의 개인경호원들도 무기를 소지하도록 허용되었다.<ref name="브커1">일월총서 71 한국전쟁의 기원(브루스 커밍스, 김자동옮김, 최옥자펴냄, 일월서각) 2001년판 253~254쪽</ref> 김구는 [[11월 3일]] 임시정부 1진으로 귀국, [[상하이]] 비행장에서 중국 국민당 인사들의 환송을 받고 출발하였다.출발하였ㅅㅣ발
다.
 
=== 광복 이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