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쿠다이지 사네쓰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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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존왕양이]]파의 공경으로 활약하였으며 [[1862년]]([[분큐]] 2년)에 [[국사어용괘(国事御用掛)]], 다음 해에는 의주(議奏)가 되었지만, [[1863년]](분큐 3년)에 일어난 [[8월 18일의 정변]]에 관련되어 근신하게 된다. 왕정복고 이후 [[1868년]]([[게이오]] 4년) 1월에 메이지 정부에 참여하여 의정(議定)으로서 내국사무총독(内国事務総督)을 겸하였고, 2월에는 내국사무국독(内国事務局督), [[1869년]]([[메이지]] 2년) 내정직지사(内廷職知事), 그 다음에는 [[대납언]](大納言)에 이르렀다.
 
[[1871년]]에 [[궁내성]]에 들어가서 시종장과 궁내경을 겸임하였다. [[1891년]]에 내대신 겸 시종장이 되어서 [[메이지 천황]]의 측근으로서 천황이 붕어할 때까지 보좌하였다. 메이지 천황의 정치 관여에는 강하게 반대하여 [[모토다 나가자네]](元田永孚) 등이 시보(侍補)를 설치하여 천황 친정 운동을 벌일 때에도 이를 저지하고자 하였다. 또한 자신의 정치적 관여도 강하게 경계하여 시종장 재임 중에 정계에 진출한 친동생 [[사이온지 긴모치]](西園寺公望)와도 공적 장소 이외에서는 대화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