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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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昌德宮)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에 있는 [[조선|조선 시대]] 궁궐로 동쪽으로 [[창경궁]]과 맞닿아 있다. [[경복궁]]의 동쪽에 있어서 [[조선]] 시대에는 [[창경궁]]과 더불어 '''동궐'''(東闕)이라 불렀다.<ref>[http://100.nate.com/dicsearch/pentry.html?s=K&i=252110&v=42 창덕궁]{{깨진 링크|url=http://100.nate.com/dicsearch/pentry.html?s=K&i=252110&v=42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f> [[창덕궁]]은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중요한 고궁이며, 특히 [[창덕궁]] 후원은 한국의 유일한 궁궐후원이라는 점과 한국의 정원을 대표한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높다.<ref name="글로벌 서울">《[[글로벌 세계대백과]]》〈[[: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한국지리/중부지방-남부지방/서울특별시/서울의 사회·문화#창덕궁|창덕궁]]〉</ref> 1997년에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유산|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창덕궁은 [[고려]] 시대 궁궐의 전통을 이어받았고, [[개성직할시|개성]]의 [[송악산 (개성)|송악산]]의 [[만월대]]처럼 자연 지형에 맞추어 산자락에 지어졌다. 보통 궁궐은 인위적으로 존엄성과 권위를 드러내도록 건축되지만 [[창덕궁]]은 이러한 얽매임 없이 [[북악산]]의 줄기인 응봉의 산자락 생긴 모양에 맞추어 적절하게 궁궐의 기능을 배치하였다.<ref>문화재 사랑 2008년 9월호, [[문화재청]]</ref>
 
[[창덕궁]]은 정궁인 [[경복궁]]보다 오히려 더 많이 쓰인 궁궐이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이후 다시 지어졌고, 1868년 경복궁이 다시 지어질 때까지 경복궁의 역할을 대체하여 임금이 거처하며 나라를 다스리는 정궁이 되었다. [[일제 강점기]]에 많은 부분이 의도적으로 훼손되었으나, 조선 후기에 그린 《[[동궐도]]》와 1900년에 그려진 《[[동궐도형]]》을 참조하여 복원이 진행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