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하마드 레자 팔라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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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에서 [[레자 샤 팔라비]]와 그의 두번째 아내 [[Tadj ol-Molouk]] 사이에서 태어났다. 레자 샤의 자녀 11남매 중 셋째였으며 아들들 중에서는 장남이었다. 쌍둥이 누이 [[아스라프 팔라비]]와 함께 태어났으며, 레자 샤가 1925년 이전에는 왕이 아니었기 때문에 모하마드 레자 위의 누나들은 왕족으로 태어나지 않았다. 레자 샤는 1919년에 아들이 태어나면서 자신의 행운이 시작되었다고 믿고 모하마드를 "행운의 새"라는 뜻의 "코스가담"(''khoshghadam'')이라고 불렀다.<ref>Fereydoun Hoveyda, The Shah and the Ayatollah: Iranian Mythology and Islamic Revolution (Westport: Praeger, 2003) p. 5; and Ali Dashti, ''Panjah va Panj'' ("Fifty Five") (Los Angeles: Dehkhoda, 1381) p. 13</ref>
 
모하마드 레자가 11살이 되었을 때 아버지 레자 샤는 [[압돌후세인 테이무르타시]]의 충고에 따라 아들을 스위스의 [[에스티티 르 로제]]로 유학 보냈다. 그는 해외에서 교육을 받은 최초의 이란 왕위계승 후보자로, 4년동안 스위스에서 지내다가 고등학교 졸업장은 이란에서 받기 위해 1936년 귀국했다. 그 뒤 모하마드 레자 왕세자는 테헤란의 [[군사학교]]에 입학하여 1938년까지 거기 다녔다.<ref name="iranchamber">{{웹 인용|url= http://www.iranchamber.com/history/mohammad_rezashah/mohammad_rezashah.php|title=Mohammad Reza Shah Pahlavi|publisher=Iran Chamber|accessdate=18 June 2011}}</ref>
 
== 치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