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고슬라비아 침공: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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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경 ==
[[1940년]] [[제2차 세계 대전]]이 시작된 지 몇 달 만에 [[프랑스 공방전]]으로 수도 [[파리 (도시)|파리]]가 함락되는 것을 지켜본 [[유고슬라비아 왕국]]은 [[1941년]] [[3월 25일]] [[추축국]] 진영에 가입한다.
 
하지만 유고슬라비아 국민들은 추축국 진영에 가입한 정부를 비난하며, [[삼국 동맹 조약]]이 무효임을 선언하였고 그리고 그 해 [[3월 27일]]에 [[밀란 네디치]] 총리가 이끄는 친영파 세력이 [[1941년 유고슬라비아 쿠데타|쿠데타]]를 일으켜 삼국 군사 동맹 가입을 주도한 [[유고슬라비아의 파울|파울]]을 몰아내자 독일과 이탈리아가 유고슬라비아 영토에 침입하였다.
 
== 과정 ==
쿠데타는 히틀러에게 신속하고 거침없이 행동할 수 있는 구실을 줄 수 있었다. 유고슬라비아군은 국경을 방어할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고, 방어 배치도 허술하였다. 쿠데타를 주도하였던 공군은 [[4월 6일]] 나치 독일의 공격이 시작된 지 몇 시간 만에 모두 진압되었으며, 동시에 시작된 [[베오그라드 공습]]으로 3,00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독일군은 이탈리아, 헝가리 부대와 함께 신속하게 공격함으로써 제대로 대비하지 못하고 있던 유고슬라비아군을 혼란에 빠뜨렸다.
 
크로아티아인과 슬로베니아인들은 독립을 주장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특히 크로아티아의 우익 집단인 [[우스타샤]]는 추축국에게 적극 동조 하였다. 공격 측의 사상자는 151명밖에 없었다.
 
정전문서는 [[4월 17일]]에 조인되었으며 항전을 결심한 [[고급 장성]]은 제2군의 참모장이던 [[드라자 미하일로비치]]뿐이었다. 그는 소규모의 군을 이끌고 산악 지대로 들어갔고, 이들이 후에 [[체트니크]]를 구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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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1941년 4월]]
[[분류:1941년 분쟁]]
[[분류:추축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