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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2333년은 신석기시대이고 비파형 동검의 연대가 BC1500년 이상으로 올라가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흔히 고조선의 건국연대를 BC10세기 정도로 본다. 하지만 이미 홍산문명에서는 당시 신석기 시대 수준으로는 제련할수 없는 세련된 옥기나 관석묘들이 속속들이 발견되고 있고 그 연대는 BC5000-8000까지 올라간다. 메소포타미아 문명도 BC4000년 기원했지만 설형문자를 만들었다. 한국사관들의 프레임으로 보면 이 메소포타미아 문명도 신석기시대에 속하니 문명 자체의 존립이 어렵다. 일본의 실증사관이 깊게 뿌리박힌 한국 역사학에 큰 우려를 표한다. 실증사관 자체는 역사의 객관성을 준다는 측면에서 긍정되어야 하나 실증사관 자체가 역사의 주류 관점으로 자리잡아버려서 옛 문헌이나 기록을 부정하는 경향이 크다. 말로는 옛 기록을 타당하게 비판해 역사의 신뢰성을 높인다라는 그럴싸한 말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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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고조선'''(古朝鮮, {{llang|en|Gojoseon}}, BC2333? ~ [[???기원전 108년]])은 [[한국의 역사]]상 최초의 고대 국가이다.<ref>고조선 [古朝鮮]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f> 본래 국호는 '''조선'''(朝鮮)이나, 일반적으로 [[14세기]] 말 [[조선 태조|이성계]]가 건국한 같은 이름의 왕조([[조선]])와의 구분을 위해 '고조선'이라 부른다. 그러나 사실 [[위만]]이 건국한 [[위만조선]]과의 구분을 위해 사용된 용어이다. [[고려]] 시대 [[일연]]이라는 승려가 [[삼국유사]]를 지으면서 [[고조선]]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헌상의 기록에 따라 실존했던 국가라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관련 기록이 적고 추상적이고 모호하며 직접적으로 고조선의 것이라 암시되는 유물·유적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고조선의 연대와 강역·역사·문화 등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다.<ref>[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23224&cid=1590&categoryId=1590 「고조선」,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f>
 
[[대한민국]]의 역사학계는 일반적으로 고조선이 [[청동기]] 문명을 기반으로 한 [[만주]] 및 [[한반도]]에 있던 [[고대 국가]]라고 파악하고 있다.<ref>한영우 외, 한국사특강위원회, 《한국사특강》, [[서울대학교]]출판부, [[2006년]], {{ISBN|89-7096-115-1}}, 40쪽 - [[농업]] 경제와 [[청동기]]문화를 영위한 이래로 [[한반도]]와 중·남부 [[만주]] 지역 각지에서 새로운 정치적인 움직임이 서서히 태동하는 가운데서 가장 먼저 역사의 무대에 두각을 나타낸 것이 조선이다.</ref><ref>김기흥, 《한국고대사》, 역사비평사, 1993년, {{ISBN|8976960025}}, 235쪽</ref><ref>한국박물관연구회, 《한국의 박물관 2 - 경보화석박물관.양구선사박물관》 , 문예마당, 1999년, {{ISBN|8982990755}}, 58-59쪽 - 고조선은 물론 청동기 국가였음이 분명하지만 그리고 [[비파형 동검]]을 사용했지만, 전남지역에서 [[비파형 동검]]이 발견되었다고 그 곳까지 고조선의 강역으로 볼 수는 없다……</ref><b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