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잦은 무고와 군무이탈로 평가는 최악 수준이다. [[원균]]이 비교대상일 정도로 이일은 후대의 평가가 매우 나쁘며 그 일은 [[녹둔도]]에서 재직중이던 시절 [[이순신]]을 모함한 일로부터 비롯되었다. 이순신은 분명 적과 맞서 싸워서 승리를 달성하고 추가로 납치된 조선 백성 60여 명을 구출한 공로가 있음에도 이일은 이런 이순신에게 죄를 씌웠기 때문에 평가가 좋을 수가 없다.
 
적어도 [[신립]]은 [[탄금대 전투]]에서만큼은 목숨을 바쳐가며 싸워 장렬히 전사했지만 같은 장소에서 싸우던 이일은 여기서마저 또다시 군무이탈을[[군무이탈]]을 했기 때문에 신립보다 평가가 더욱 나쁘다.
 
{{인용문2|적은 신병(神兵)입니다. 무조건 강합니다.|이일, 신립의 상주에서 만난 왜군의 군세를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ref>[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396&aid=0000279928 (김상회 풍경소리) 임진왜란때 조정대신과 군지휘관의 작태를 되돌아 보면서]</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