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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스테파노 9세'''(<small>[[라틴어]]:</small> Stephanus PP. IX, <small>[[이탈리아어]]:</small> Papa Stefano IX)는 제154대 [[교황]](재위: [[1057년]] [[8월 2일]] - [[1058년]] [[3월 29일]])이다. 본명은 '''프리드리히 폰 로트링겐'''({{llang|de|Friedrich von Lothringen}})이다. 프리드리히는 [[하로렌 공작 고트프리트 3세]]의 동생이자<ref name="Healy50">Patrick Healy, ''The Chronicle of Hugh of Flavigny: Reform and the Investiture Contest in the Late Eleventh Century'', (Ashgate Publishing, 2006), 50.</ref> 당시 [[신성 로마 제국]]의 정계를 주름잡던 [[아르덴-베르됭 왕조]] 출신이었다. 또한 성 비안네 수도원과 매우 가까운 사이였다.<ref name="Healy50" />
 
프리드리히는 [[하로렌 공작 고트프리트 3세]]의 동생이자<ref name="Healy50">Patrick Healy, ''The Chronicle of Hugh of Flavigny: Reform and the Investiture Contest in the Late Eleventh Century'', (Ashgate Publishing, 2006), 50.</ref> 당시 [[신성 로마 제국]]의 정계를 주름잡던 [[아르덴-베르됭 왕조]] 출신이었다. 또한 성 비안네 수도원과 매우 가까운 사이였다.<ref name="Healy50" />
 
프리드리히는 본래 리에주의 성 람베르토 대성당의 수석부제가 되기로 예정되어 있었으나, [[교황 빅토르 2세]]에 의해 파격적으로 [[추기경]]에 서임되었다.<ref>Charles Radding and Francis Newton, ''Theology, Rhetoric, and Politics in the Eucharistic Controversy, 1078-1079'', (Columbia University Press, 2003), 89.</ref> 그리고 한동안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교황 특사]]로서 임무를 수행하였다.<ref>H. E. J. Cowdrey, ''Pope Gregory VII, 1073-1085'', (Oxford University Press, 1998), 482.</ref> 또한 그는 [[노르만족]]에 맞선 [[교황 레오 9세]]의 토벌대와 동행했으며, 한때는 [[하인리히 2세 (신성 로마 제국)|하인리히 2세]] 황제를 피해 [[몬테카시노]]로 피신하기도 하였다.<ref name="Healy50" /> 빅토르 2세 교황이 선종한 지 5일째 되는 날에 프리드리히가 빅토르 2세의 뒤를 이어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새 교황은 자신의 이름으로 스테파노 9세를 선택하였다. 새 교황이 선출되어 즉위할 당시 신성 로마 제국에서는 국내적으로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황제의 승인은 따로 받지 않았다. 하인리히 4세는 당시에는 아직 미성년자라 태후 [[푸아투의 아그네스|아그네스]]가 섭정하고 있었고 교황의 형은 하로렌의 공작이었으므로 사실 신성 로마 제국의 승인이 필요 없었는지도 모른다. 스테파노 9세는 [[교황 파스칼 1세]] 이래 로마의 성직자들에 의해 자유로이 교황으로 선출된 인물이었다. 스테파노 9세는 성직자들의 독신주의와 관련하여 [[그레고리오 개혁]]을 실행에 옮겼으며, 노르만족을 이탈리아에서 완전히 축출한 다음 자신의 동생을 황제로 등극시키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이 당시 스테파노 9세는 중병에 걸려 겨우 일시적 내지는 부분적으로만 몸을 겨우 움직일 수 있었다. 1058년 3월 29일 스테파노 9세는 [[피렌체]]에서 선종하였다. 스테파노 9세의 재위는 비록 짧았으나 그레고리오 개혁 이전에 교회를 쇄신하고자 노력한 교황 레오 9세와 [[교황 니콜라오 2세]]와 더불어 위대한 교황으로 평가되고 있다.
 
새 교황이 선출되어 즉위할 당시 신성 로마 제국에서는 국내적으로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황제의 승인은 따로 받지 않았다. 하인리히 4세는 당시에는 아직 미성년자라 태후 [[푸아투의 아그네스|아그네스]]가 섭정하고 있었고 교황의 형은 하로렌의 공작이었으므로 사실 신성 로마 제국의 승인이 필요 없었는지도 모른다. 스테파노 9세는 [[교황 파스칼 1세]] 이래 로마의 성직자들에 의해 자유로이 교황으로 선출된 인물이었다.
 
스테파노 9세는 성직자들의 독신주의와 관련하여 [[그레고리오 개혁]]을 실행에 옮겼으며, 노르만족을 이탈리아에서 완전히 축출한 다음 자신의 동생을 황제로 등극시키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이 당시 스테파노 9세는 중병에 걸려 겨우 일시적 내지는 부분적으로만 몸을 겨우 움직일 수 있었다. 1058년 3월 29일 스테파노 9세는 [[피렌체]]에서 선종하였다. 스테파노 9세의 재위는 비록 짧았으나 그레고리오 개혁 이전에 교회를 쇄신하고자 노력한 교황 레오 9세와 [[교황 니콜라오 2세]]와 더불어 위대한 교황으로 평가되고 있다.
 
== 각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