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사레이아의 바실레이오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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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러시아]], [[카파도키아]], [[병원]] 관리자, [[수사 (기독교)|수사]], 교육자, [[구마 (가톨릭)|구마]] 사제, 전례학자
}}
'''카이사레아의바실레이오스 바실리오'''카이사레이아스({{llang|el|Βασίλειος 또는 '''성 대 바실리오'''는 이탈리아식 이름 읽기이고Καισαρείας}}), 실제 사용한 이름은 헬라어로 '임금, 제왕'을 뜻하는 '''바실레이오스'''이다. 흔히 '''성 대 바실레이오스'''({{llang|el|Ἅγιος Βασίλειος ὁ Μέγας|하기오스 바실레이오스 호 메가스}}, {{llang|la|Sanctus Basilius Magnus|상투스 바실리우스 마뉴스}})로도 불린다. 329년 또는 330년<ref>Fedwick (1981), p. 5</ref> - 379년 1월 1일 또는 2일)는 오늘날 [[터키]]에 속한 지역인 [[로마 제국]]의 [[아나톨리아|소아시아]] [[카파도키아]]의 [[카이사레아]]의 [[그리스인]] [[기독교]] [[주교]]이다. 그는 [[아리우스주의]]와 [[라오디케이아의 아폴리나리스]] 등 초기 기독교의 이단들의 주장을 반박하고 [[니케아 신경]]을 지지한 유명한 신학자였다. 그는 뛰어난 신학적 지식과 더불어 정치적으로도 유능한 인물로서, 자신의 능력으로 니케아 신학을 강력하게 옹호하였다.
 
바실리오는 신학적으로서 뿐만 아니라 가난하고 소외된 계층을 지원했던 인물로도 당대에 유명했다. 그는 공동체 생활과 전례력에 따른 기도, 고된 노동에 대한 지침들도 마련하였다. [[파코미오]]와 더불어 그는 ‘동방 기독교의 수도 생활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동방 기독교]]는 물론 [[서방 기독교]]에서도 바실리오를 [[성인 (종교)|성인]]으로 공경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