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3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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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 [[러시아 정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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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3세 바실레비치'''({{llang|ru|Иван III Васильевич}}) 또는 '''이반 대제'''({{llang|ru|Иван Великий|이반 벨리키}})([[1440년]] [[1월 22일]] ~ [[1505년]] [[10월 27일]])는 [[모스크바 대공국|모스크바 대공]]과 전 [[루시]]의 [[벨리키 크냐즈|대공]]({{llang|ru|Великий князь всея Руси}})이다. 모스크바 대공으로서 [[노브고로드 공화국|노브고로트]]를 비롯한 여러 공국을 쳐서 영토를 확장했으며 북동 러시아를루스를 통일하였다. 이반 3세의 시대에 드디어 러시아는모스크바는 [[킵차크 한국]]의 지배에서 벗어났으며 훗날 [[러시아 제국]]이 되는 [[모스크바 대공국]]의 기초를 닦았다. [[비잔티움 제국]] 마지막 황제의 조카딸 소피아와 결혼하여 비잔티움 제국의 후계자로 칭하고, 비잔티움 문화를 받아들여 러시아모스크바 문화 발전의 바탕이 되게 하였다.
 
== 생애 ==
초기에는 노브고르트를 비롯한 국내 제공국을 병합하여 러시아루스 통일을 강력히 추진했다. [[1480년]] 킵차크 한국에서 독립하여 러시아는 240년간에 걸친 몽골의 지배에서 벗어났다. 그는 1472년 [[동로마 제국]] 최후의 황제 질녀인 소피아와 결혼했는데 이것을 계기로 비잔티움식의 전제주의가 러시아에모스크바에 유입되어 러시아의모스크바의 대공은 동로마 제국의 후계자 및 정교회의 옹호자를 자처하며, 로마 황제의 쌍두 수리를 러시아의 문장으로 하여 모스크바는 '제3의 로마'로서 정교회의 총본산이 되었다.([[러시아 정교회]] 참조)
 
그는 교회의 신성 불가침을 확인하였으며, [[왕권신수설]]을 주장하였다. [[1497년]] 농노화로서의 길을 열고, 소지주 사족에게 노동력을 보증하였다.
 
이 시대에 러시아에도모스크바에도 상업공업경제의농업의 발전이 보였고, 러시아의루스의 통일은 이를 배경으로 하는 것이었는데 영국, 프랑스와는 반대로 러시아의모스크바의 농민은 이 무렵부터 토지에 얽매여서 [[농노제]]가 강화되었다.
 
== 참고 자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