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리히 5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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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 왕위 계승 ===
[[1086년]]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하인리히 4세와 그의 첫 번째 아내인 [[사보이의 베르타]]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태어날 당시에 황제인 아버지와 교황 사이에서 교회의 서임권을 둘러싸고 다툼이 진행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1087년부터 공동왕에 올랐던 그의 형 [[이탈리아의 콘라트|콘라트]](1074-1101)가 십자군 운동을 제창한 교황 [[교황 우르바노 2세|우르바노 2세]]를 따르기로 하면서 아버지와는카노사 반대편에성주 섰다마틸다와 동조하여 1093년에 반란을 일으켰으나 실패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 때문에 하인리히 4세는콘라트는 [[1098년]]의 [[마인츠]]의 왕국 회의에서, 장남폐위되고, 대신에 차남차남인 하인리히 5세를5세가 독일 왕위 계승자로 정했고정해진후 [[1099년]] [[1월 6일]]에 왕위에 올랐다.
 
하지만 교회와 화해하지 않는 상황에서 완전한 권위는 불가능했기 때문에 파문 해제를 전제로 십자군 전쟁에 참가하겠다고 한 하인리히 4세는, 이를 위해 영주들에게 분쟁의 제한을 가했다. 이러한 제한에 영주들은 불만을 가졌고, 그들과의 다툼을 두려워한 하인리히 5세는 아버지를 희생하여 자신의 왕위 계승을 확실히 하려고 바이에른의 영주들과 협약을 맺은 후 [[1104년]] 반기를 들었다.
 
유력 영주들과 로마 교황마저 하인리히 5세를 지지하게 된 상황에서 하인리히 4세는 쾰른으로 도망쳤다가 마인츠에서 감금되고, [[1105년]]에 퇴위당했다. 비록 왕위를 잃었지만 포기하지 않던 하인리히 4세는 리에주로 달아났다가 [[로렌]] 지방 사람들과 연합해 [[1106년]]에 하인리히 5세의 군대를 무찔렀다. 그러나 몇 개월 뒤 하인리히 4세가 갑작스럽게 죽으면서 분쟁은 일단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