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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킬로미터 떨어진 곳에는 아비셰크 푸쉬카리니(Abishek Pushkarini, 즉위의 연못)라는 인공 호수가 있는데 바이샬리의 왕들이 대관식을 거행하던 곳으로, 호수의 물을 바이샬리의 지도자로 새로 선출된 자의 머리에 부었다고 한다. 호수 인근에는 일본의 법화종 계열의 불교 종파인 닛폰잔 묘호지 대승가(日本山妙法寺大僧伽)가 지은 일본식 불교 사찰과 비슈와 샨티 스투파(세계평화탑)가 서 있다. 바이샬리에서 발견된 석가모니 부처의 유물의 작은 부분이 스투파의 기단과 차트라에 안치되어 있다.
 
아비셰크 푸쉬카리니 근처에는 1호탑과 또는 렐릭 스투파(Relic Stupa)가 있다. 이곳에 리차비인들은 석가모니 부처의 열반 이후에 받은 유품 여덟 부분 중 한 부분을 경건하게 모셨다. 석가모니 부처는 입멸 석 달 전에 바이샬리에서 마지막 하안거를 보내고, 어느 날 탁발을 하고 돌아오는 언덕에서 그를 모시던 제자 아난다(아난존자)에게 "아름다운 바이샬리를 보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 될 것이다." 그가 바이샬리를 떠나 쿠시나가르로 향했을 때, 리차비인들은 그를 따라 쿠시나가르로 가려 했다. 석가모니 부처는 그들에게 자신이 가진 발우를 주며 돌려보냈지만 그들은 거절했고거절하며 석가모니 부처를 따르려 했고, 이에 석가모니 부처는 신통력으로 기슭이 깊게 파이고 물살이 굉장히 빠른 강의 환상을 만들어내서 자신을 따라 오려는 리차비인들을 돌려보냈다고 한다. 이 장소는 아소카 대왕이 나중에 탑을 세운 오늘날 케살리야 마을의 데오라와 동일시할 수 있다. 석가모니 부처가 가장 아끼는 제자였던 아난다(아난존자)는 바이샬리 외곽의 갠지스강 한가운데서 열반에 들었다.
 
석가모니 부처가 열반에 들고 백 년이 지나서 이곳 바이샬리에서 [[결집|제2차 불경 결집]]이 이루어졌는데, 당시 바이샬리의 불교 교단과 재가신자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던 열 가지 관습들을 불교의 계율상 정법(관행)으로써 인정할 것인가 비법(불법)으로써 금지해야 할 것인가를 놓고 승도들이 여덟 명의 대표자를 뽑아 진행한 회의에서 해당 관행들을 인용하느냐 금지하느냐에 대한 해석의 차이로 인해 불교는 [[상좌부 불교]]와 대중부 불교([[대승불교]])로 나뉘게 되었다([[근본분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