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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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 출생과 가정 배경 ====
김정일은 [[1941년]]([[주체연호|주체]] [[1941년|30년]]) [[소비에트 연방]]에서 [[
흔히들 김정일이 [[소비에트 연방]](현재의 [[러시아]]) [[하바롭스크]] 인근 [[뱌츠코예]]에서 '''유리 이르세노비치 킴'''({{llang|ru|Юрий Ирсенович Ким}}, Yuri Irsenovich Kim)이라는 이름으로 출생했다고 하지만 이도 정확하지 않다. 김일성 일가가 뱌츠코예에 [[제88국제여단 (소련)|88여단]]이 창설되면서 거기로 이주한 것은 1942년 7월 중순이므로, 뱌츠코예는 김정일의 출생지가 아니라 유년기를 보낸 곳이다. 또 소련군 시절 김일성의 이름은 김일성(Ким Ир Сен, Kim Ir-sen) 아닌 진지첸(Цзин Жи Чен 또는 Цзин Жичэн, Jing Zhichen)이었으며, 소련군 문서에는 해방 후 평양에 온 뒤인 1945년 10월 2일부터 김일성(Ким Ир Сен)으로 바꾸어 적기 시작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2061700209202007&edtNo=2&printCount=1&publishDate=1992-06-17&officeId=00020&pageNo=2&printNo=21856&publishType=00020 소(蘇), 6.25 남침(南侵) 비밀 문건(文件) 공개] 동아일보 1992.06.17 일자 2면</ref> 따라서 김정일의 소련식 이름 유리 이르세노비치 킴(Юрий Ирсенович Ким)도 평양에 온 이후에나 가능하고, {{출처|소련에 있을 당시 이름은 '''유리 지체노비치 진'''(Юрий Жичэнович Цзин, Yuri Zhichenovich Jing)이었을 가능성이 크다.|날짜=2020-01-28}}
김정일의 정확한 출생지를 두고는 논란이 많으나 명백히 밝혀진다. 만주서 일본군의 토벌에 쫓기던 김일성은 김정숙과 함께 부하 몇명을 데리고 1940년 10월 23일 소만국경을 불법월경하여 소련으로 도주한다<ref name="joins">[http://news.joins.com/article/3106307 (다시쓰는한국현대사) 38.만주서 소련으로 金日成의 越境] 중앙일보 1995.08.01 / 종합 10면</ref>. 소련으로 망명해온 항일연군들은 [[우수리스크|
[http://news.donga.com/Main/3/all/20150805/72876368/1 (황호택 칼럼)유라의 탯줄을 길게 자른 조산원 엘냐] 동아닷컴 2015-08-05 <br>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2061300209209011&edtNo=1&printCount=1&publishDate=1992-06-13&officeId=00020&pageNo=9&printNo=21852&publishType=00020 "金正日(김정일) 출생지는 蘇(소)「하마탄」마을"] 동아일보 1992.06.13<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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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보중(周保中), 동북항일유격일기(東北抗日遊擊日記, 1991年 人民出版社) p.660 : 1942년 7월 19일자에 김일성이 어제 보로실로프에서 하바로프스크로 와서 뱌츠코예 마을 본 숙소에 머문다고 하였다. (七月十九日 金日成同志已于昨日由B城來X城 住B街本寓); B城은 보로실로프(Вороши́лов)로 지금의 [[우수리스크]]이고, X城은 [[하바로프스크]](Хабаровск), B街는 뱌츠코예(Вя́тское)를 말한다.</ref>
북한에서는 김정일이 [[백두산
어린 시절 그는 러시아어 이름 유리의 애칭인 '유라'라는 이름으로 불렸고, 1945년 8·15광복 이후 부모를 따라 북한으로 들어온 후로도 한동안 '김유라'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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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 러시아식 이름을 버리고 김정일(金正一)이라 하였고,<ref name="wo1">[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7/03/2010070300055.html '어두운 구름(雲, 운)' 대신 '빛나는 銀(은)'으로? - 1등 인터넷뉴스 조선닷컴<!-- 봇이 따온 제목 -->]</ref> 1980년에는 한자 이름을 正日로 개명하였다. 북한 쪽에서는 이러한 사실을 부인하고 처음부터 김정일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고 주장한다. 참고로 정일(正日)이라는 이름은 어머니 [[김정숙 (1917년 12월)|김정숙]](金正淑)의 '정'(正)과 아버지 [[김일성]](金日成)의 '일'(日)을 합친 이름이다. 조부 [[김형직]]이나 조모 [[강반석]]은 그가 태어나기 이전에 사망했으나, 증조부 [[김보현 (1871년)|김보현]]과 증조모 [[이보익]]은 그가 10대일 때까지도 생존하고 있었다.
광복으로 귀국한 후, 김정일은 북한에서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으나 아홉 살 때 어머니가 난산 끝에 세상을 떠나고 만다.<ref name="투쟁1">[http://news.empas.com/show.tsp/cp_hd/20081024n08195/?kw=%B1%E8%C0%CF%BC%BA+%B1%E8%C1%A4%BC%F7+%B1%E8%C0%CF%BC%BA+%B1%E8%C1%A4%BC%F7+%B1%E8%C0%CF%BC%BA+%B1%E8%C1%A4%BC%F7+ 네이트 뉴스<!-- 봇이 붙인 제목 -->]</ref><ref>난산이 아니라 병사했다는 설도 있다.</ref> 이후 김정일은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불우하게 자랐다.
==== 유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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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이후 [[러시아]]와 [[중화인민공화국]]을 수시로 방문하여 외교활동을 전개하였다. 한편, [[미국]]의 [[카터]], [[클린턴]] 등의 전직 대통령 역시 수시로 [[평양]]을 방문하여 외교 활동을 하고 있다. 외교활동의 목적으로 그는 자원 지원을 주로 중점적으로 하였다.
북한은 1993년부터 역사적으로 유래없는 자연재해와 공산주의권 나라들의 붕괴, 그리고 서방세력의 경제봉쇄 등으로 최악의 경제난 및 식량난을 겪었는데, 이를 북한에서는 '고난의 행군'이라고 부른다. 약 6년간의 고난의 행군을 마치고 북한은 이제 강성대국으로 향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한민국 통계청]]이 [[유엔]]의 [[인구센서스]]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북한주민 33만여명이 90년대 후반 ‘고난의 행군’시기에 굶어 죽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4779426 북한주민 기대수명 남한보다 11세 낮아</ref><ref name="통계청">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5&aid=0002108780 북한 ‘고난의 행군’ 5년 동안 주민 33만 명 굶어 죽어</ref> 2003년에 발표된 [[국제앰네스티]]의 리포트에서는 북한 인구의 절반을 넘는 1300만 명이 기근에 시달리고 있으며 2001년에는 [[미국]], [[한국]], [[일본]], [[유럽연합]] 등으로부터 상당량의 식량, 비료 원조를 받기도 하였다.<ref>{{웹 인용 |url=http://www.amnesty.org/en/library/info/ASA24/003/2004 |제목=North Korea: Starved of Rights: Human rights and the food crisis in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North Korea)
===== 7.1 경제개혁조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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