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클레멘스 7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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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초기 ==
[[파일:Raffael 040.jpg|섬네일|왼쪽|200px|1519년 [[라파엘로]]가 그린 [[교황 레오 10세]]의 그의 사촌 추기경들. 레오 10세의 왼쪽에 있는 자가 줄리오 데 메디치, 곧 미래의 교황 클레멘스 7세이다.]]
1478년 5월 26일, [[이탈리아 반도]]에 위치한 [[피렌체 공화국]]에서 [[줄리아노 데 메디치]]와 그의 정부(情婦) 고리니 가문의 안토니아 델 치타디노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 줄리아노는 그가 태어나기 한달 전 [[파치 음모사건|파치가의 음모사건]]때 암살당했다.<ref>파치가 음모 사건(Congiura dei Pazzi)은 파치 가문이 주도하여 피렌체의 통치자로 있던 메디치 가문을 전복시키고 정권을 잡기 위해 벌인 사건이다. 1478년 4월 26일 피렌체 대성당에서 일요일 미사를 들이고 있는 메디치 가문의 형제 2명에 대해 기습적으로 살해를 감행하였다. 백부 로렌초는 부상을 입었지만 탈출에 성공하여 살아남았으나 생부 줄리아노는 그 자리에서 즉사하였다. 정권탈취를 위한 파치가문의 쿠테타는 실패로 끝났고 공모자들의 대부분은 곧 체포되어 성난 군중에 의해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하였다. 파치 가문은 피렌체에서 추방당했고, 그들의 재산은 모두 몰수당하였다. 메디치 가문과 원수관계에 있던 교황 식스토 4세(재위 1471~84)는 이번 반란을 간접적으로 지원하였다.</ref>때 암살당했다. 얼마 안가 어머니까지 여읜 줄리오는 고아 신세가 되고 말았다. 백부 [[로렌초 데 메디치]]가 그를 거두어들여 양육하였다. 1494년에 메디치 가문이 피렌체에서 추방당하자 줄리오는 1512년까지 18년동안 가문의 일족들과 함께 유럽의 여러 나라를 떠돌아다녀야 했다.
 
줄리오는 사촌형 조반니 데 메디치 추기경이 [[교황 레오 10세]](1513-1521)로 선출되자 [[로도스 기사단]]에 입단하고 곧이어 로마로 거처를 옮겨 단번에 [[로마 교황청]]의 실세로 등극하였다. 교황 레오 10세에 의해 참모이자 고문으로 등용되었으며, 특히 피렌체의 대교구장으로 임명되어 피렌체에서 [[메디치 가문]]의 이익을 위해 전력을 다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