캉브레 동맹 전쟁: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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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동맹의 분열''' (1513년 3월)
 
정복지역에 대한 처리 문제만큼은 합의에 이르기 힘들어 동맹간에 불협화음이 발생하였다. 교황 율리오 2세와 베네치아는 스포르차 가문에 의한 밀라노 공국의 통치를 지지했으나 신성로마제국 황제 막시밀리안 1세과 스페인 페르난도 2세는 그들의 친척을 공작으로 세우려했다. 교황은 페라라를 교황령으로 합병을합병시킬것을 원했으나 페르난도 2세는 교황의 세력을 억제하기 위해서 이를 거부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베네치아를 대한 황제 막시밀리안 1세의 태도였다. 황제는 전쟁 중에 차지했던 그 어떤 영토도 내놓기를 거부했다. 협상이 지지부진하게 진행중인 1513년 2월 21일에 교황 율리오 2세가 사망하자 신성동맹은 구심점을 잃고 말았다.
 
신임 교황 레오 10세와 황제는 마지막 영토 협상에서 베네치아를 협상 테이블에서 제외시키기로 합의했다. 이것에 대해 베네치아가 극렬하게 반대하자, 교황은 캉브레 동맹을 재결성하겠다고 하며 베네치아를 위협했다. 이에 대항해 베네치아는 1513년 3월 23일 루이 12세와 블루아에서 조약을 체결하여 프랑스와 베네치아 가 이탈리아 북부의 영토를 나누어 가지기로 합의를 함으로써 다시 프랑스와 동맹을 맺었다.<ref>Norwich, ''History of Venice'', 425.</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