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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훌라가 태어난 지 이레째 되는 날 밤, 싯다르타는 왕자는 모두가 잠든 사이에 아무에게도, 심지어 아내인 야쇼다라에게도 알리지 않고 한밤중에 왕궁을 떠나 출가를 결행하였다. 뒤늦게 그가 떠났다는 사실을 알고 야쇼다라는 망연자실했고 슬픔에 잠겼으며, 출가 수행자가 된 남편을 본받아 소박한 생활을 시작하기로 결심했다.<ref>{{cite web|url=http://www.geocities.com/neovedanta/a70.html |title=The Compassionate Buddha |publisher=Geocities.com |date= |accessdate=2009-09-23|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091021202812/http://geocities.com/neovedanta/a70.html|archivedate=2009-10-21}}</ref> 친척들이 그녀의 생활을 돕겠다고 하는 것도, 몇몇 왕자들이 그녀에게 구혼하는 것도 모두 거절하면서, 싯다르타가 출가하고 성도하기까지 6년 동안, 야쇼다라는 남편 싯다르타의 행동에 대한 소식을 면밀히 추적했다. 자타카(본생담)에서는 시아버지 숫도다나 왕이 그녀의 정절을 찬양했다고 한다.
 
깨달음을 얻은 석가모니 부처가 12년 뒤에 자신의 고향 카필라바스투를 방문했을 때 야쇼다라는 전 남편을 만나러 가지 않고 아들 라훌라에게 아버지에게 유산을 받으러 가자고 했다. 야쇼다라는 이때 "내가 조금이라도 미덕을 얻었다면, 깨달은 분께서는 내 앞에 나타나실 것이다."라고 생각했고, 과연 그의 소원대로 석가모니 부처는 옛 아내 야쇼다라 앞에 나타나 아내의 인내와 희생에 감탄했다고 한다. 라훌라는 니구류원으로 가는 아버지 석가모니 부처를 따라 사미가 되었다.
 
근본설일체유부(根本説一切有部)의 《비나야파승사》(毘奈耶破僧事)에 따르면 석가모니 부처가 카필라바스투를 방문했을 때 야쇼다라는 다른 석가족의 여인들과 함께 몸을 꾸미고 향을 피워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었으나, 함께 설법을 들은 여인들 모두 예류과(預流果)에 이르렀지만 야쇼다라만은 얻지 못했다고 한다. 야쇼다라는 마하파자파티 고타미를 비롯한 5백 명의 여성과 함께 출가할 수 있도록 세 차례 간청했으나 석가모니 부처는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석가모니 부처가 카필라바스투를 떠나 바이샬리 외곽의 대림정사(중각강당)로 가는 길에도 이들은 삭발을 하고 황의를 입고 뒤를 쫓아가며 출가를 간청하였다. 강당 앞에서 다리를 붓고 눈물과 먼지와 티끌로 범벅되어 큰 소리로 울고 있는데, 이들을 본 [[아난다]]가 놀라서 이유를 물었고, 야쇼다라는 여자의 출가를 허락해 달라고 청하였다. 아난다의 설득에 야쇼다라를 비롯한 여인들은 겨우 출가를 허락받았다. 출가 후에 야쇼다라는 자신을 반성하기 위해 노력하여 여승 중의 제일인자가 되었다고 한다. 또 원시불교의 경전 중 하나로 꼽히는 남전(南伝) 테라가타(장로니게)에는 석가모니 부처와의 만남을 말한 게가 있다.
아들 라훌라가 출가해 사미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야쇼다라 역시 남편에게 귀의해 출가하였고, 머지않아 아라한과를 얻었다. 야쇼다라는 석가모니 부처의 양어머니로써 처음으로 비구니가 된 마하파자파티 고타미에 이어 5백 명의 여성과 함께 최초의 비구니가 되었으며, 남편이 열반에 들기 2년 전에 78세의 나이로 열반에 들었다.<ref>[http://www.buddhism.org/Sutras/BuddhaTeachings/page_08.html The Lord Buddha and His Teachings]</ref>
 
야쇼다라는 남편 석가모니 부처가 열반에 들기 2년 전에 78세의 나이로 열반에 들었다.<ref>[http://www.buddhism.org/Sutras/BuddhaTeachings/page_08.html The Lord Buddha and His Teachings]</ref>
 
== 전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