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체스코 페루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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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인의 직원으로 몇년을 보낸 후, 그는 어린 나이에 군인 생활을 시작하였으며 [[조반니 달레 반데 네레|조반니 데 메디치]] 휘하의 ''검은 부대''(조반니의 휘장에 있는 검은색 줄무늬에서 이름 붙어진)에서 여러 이탈리아 전장을 도며 견습 생활을 하며 대담한 전투가이자 무모한 자라는 평판을 얻었다. [[교황 클레멘스 7세]]와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카를 5세]]는 [[코냐크 동맹 전쟁]] 기간에 [[메디치 가]]의 [[피렌체]] 복위를 결정했고, [[피렌체 공화국]]을 침공했으며, 페루치는 피렌체의 지휘관으로 임명되어 대단한 용감함과 빠른 진군으로 제국군을 기습하는 등의 지략을 보여주었다.<ref name="EB1911"/>
 
1530년 초 [[볼테라]]가 피렌체와의 동맹을 저버리고 제국군 수비대가 점거하자, 페루치는 기습을 가하여 점령시켜냈다탈환하였다. 그러나 그의 부재 동안에 제국은 배신을 통해 [[엠폴리]]를 점령했고 피렌체로 향하는 주요 도로를 차단시켜버렸다. 페루치는 피렌체 정부에 [[로마]]로 진군하여 교황에게 침공 위협을 가하여 피렌체에 우호적인 평화 협상을 해야한다고 제안했지만, 피렌체 전쟁 위원회는 그를 피렌체 외부 작전 사령관으로 임명했음에도 그의 너무나도 위험한 계획을 거부했다.<ref name="EB1911"/>
 
페루치는 배후에서 제국군을 공격하는쪽으로 방향을 바꾸기로 결정했고 볼테라에서 시작하였다. 그러나 [[피사]]에서 그가 독감에 걸리며 한달을 보내면서, 적은 그의 계획에 대한 풍문을 듣게 되었고 그의 공격에 대한 대비를 할 수 있었다. 페루치는 7월 말 피사에 4,000명을 남기고 떠났다. 피렌체의 포위된 사람들은 오랑주 공작 [[필리베르 드 샬롱]]의 휘하에 황제파의 상당수가 있다는 것을 알고있었기 때문에 페루치를 만나러 갔고, 후자와 협공하길 기대했지만, 그들의 사령관 [[말라테스타 4세 발리오니|말라테스타 발리오니]]의 배신으로 무산되었다.<ref name="EB1911"/>